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새 대변인에 MBC <100분 토론> 진행자인 정연국 전 시사제작국장을 임명했다. 현직 시사토론 프로그램 진행자가 곧바로 대통령의 입으로 변신한 것이다. 총선 출마를 위해 최근 사임한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KBS <뉴스 9> 앵커를 지낸 뒤 잠시 문화부장으로 일하다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것과 같은 일이 재연됐다. 현역 언론인이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길 경우 최소한의 공백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언론 윤리다. 정치권 입문을 앞둔 언론인이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KBS가 뉴스 앵커 등을 마친 뒤 6개월 이내에 정치활동을 못하게 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KBS와 민 전 대변인은 이런 윤리 규정을 스스로 깼다.
이번엔 정 대변인과 MBC가 그 나쁜 선례를 반복했다. <100분 토론>은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정치·사회 이슈를 놓고 토론하는 MBC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13일 정 대변인의 사회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남은 과제’를 토론했고, 지난 20일엔 ‘박근혜 대통령 방미 이후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다뤘다. 이런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하루아침에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대변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방송사의 공정성은 의심받아 마땅하다. MBC가 집권세력에 대해 언론답게 공정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판을 고려하면 이런 의심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연국 청와대 신임 대변인 _연합뉴스
언론사와 언론인이 스스로 직업윤리를 파괴하고, 청와대가 언론을 하부조직처럼 대하는 일이 관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걸 기우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사례가 벌써 세번째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청와대는 SBS의 보도국장을 지낸 김성우 SBS 기획본부장을 대통령 사회문화 특보로 임명한 적이 있다. 주요 언론사 간부로 있으면서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도 당시 SBS와 당사자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었다. 권력 감시가 중요 임무인 언론인이 직업 윤리를 팽개친 채 거리낌 없이 권력의 입을 자처하고, 방송사는 그걸 비호하는 현상은 결코 건강한 언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방송사를 청와대 홍보수석 및 대변인 공급처로 여기는 듯한 박 대통령의 언론관도 비정상이다. 권력 비판이라는 언론의 역할, 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이런 인사를 되풀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언론을 권력기관 진출의 통로로 여기는 언론인이나 언론을 권력의 보조수단으로 여기는 박 대통령·청와대의 언론관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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