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길환영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다. 길 사장은 청와대의 방송 통제를 앞장서 수행하면서 공영방송을 ‘청영방송(청와대가 경영하는 방송)’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돼 왔다. 기자들은 물론 보도국 간부, 노조 등 거의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신임을 잃은 길 사장 체제로는 마비 지경에 처한 KBS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이사회도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길 사장 해임안 의결로 제작거부와 파업, 보복 인사 등 극한 대치 상황으로 치달아온 KBS 사태는 일단 수습 국면으로 들게 됐다. 양대 노조도 파업 중단을 선언했다. 이제 길 사장 해임 조치가 바닥으로 추락한 공영방송의 위상을 회복하고, KBS를 권력의 통제로부터 독립시키는 제도적 장치 마련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KBS 사태를 불러온 핵심은 정권이 공영방송을 꼭두각시처럼 부리고, 길 사장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보도를 통제하고 윤색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길 사장을 통해 보도국장의 임면에 개입하고, 특정 기사의 보도 여부와 방향까지 일일이 간섭한 정황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러난 보도국장이 “청와대가 길 사장을 통해 보도를 통제했다”며 폭로한 통제 내용은 5공 시절 ‘보도 지침’을 떠올리게 했다. 길 사장이 들어선 이후 노골화된 KBS의 정권 편향 보도와 제작의 배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된 것이다.
길 사장의 해임은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본질은 정권에 의한 방송 통제와 간섭의 고리를 끊어내고 공영방송 본연의 위상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길 사장 해임을 계기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사실상 청와대가 좌지우지하는 사장 선출 제도부터 개선이 필요하다. 보도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도입도 절실하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고, 사장이 새로 선임될 때마다 반복되는 방송장악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우선은 해임된 길 사장 후임 인사가 관건이다. 권력으로부터 방송의 중립성과 공영성을 지켜낼 수 있는 인사를 찾아야 한다. 사실상 사장 임명권을 가진 박 대통령이 발상을 바꿔야 한다. 또다시 방송을 손아귀에 잡아두려 ‘제2의 길환영’을 고집한다면 파국을 자초하는 길이다.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조차 뗄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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