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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정보+보도자료

[아침을 열며]2025년 언론 - 4가지 시나리오

지금부터 딱 10년 후인 2025년에 언론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네덜란드에서 이 문제의 답을 시나리오 형식으로 담은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네덜란드 저널리즘 펀드’가 주관한 <저널리즘의 미래 시나리오>라는 보고서다. 저널리스트·발행인·철학자·과학자·기술 전문인 등 관련 전문가 150명과의 브레인 스토밍을 거쳐 도출한 것이다. 이번 네덜란드 보고서는 보다 가까운 미래를 상정했다는 점, 보다 다양한 시각을 접목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했다.

이들이 예측의 중심 축으로 삼은 변수는 2가지다. 기술과 신뢰다.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느냐, 꺼리느냐가 첫째 변수이고 사회 신뢰도에 따라 시민 참여가 적극적이냐, 아니냐가 둘째 변수다. 이를 토대로 4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가장 유력한 것으로 꼽혔는데, ‘한 움큼의 애플’이라 명명됐다. 기술 발전은 적극 수용되고 시민 참여는 적극적이지 않을 때를 말한다. 애플·구글·페이스북 같은 소수의 IT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시민들에게 ‘맞춤형 뉴스’를 제공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디지털 플랫폼의 입지가 더욱 강화되면서 전 세계에 게임·음악·영화를 공급하는 거대 디지털 배급사가 뉴스를 공급하는 양상이다. 뉴스는 수용자의 위치·관심사·소셜미디어를 바탕 삼아 개인화된 포맷으로 제공된다. 국제적인 관점을 가지는 멀티미디어 뉴스가 각광받는 것은 물론이다.


IT회사 애플_경향DB


이런 상황에서 국내·지역 뉴스를 기반으로 하는 각국의 전통 매체는 살아남기 어려워보인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와 배급망을 장악한 ‘IT 공룡’과 경쟁할 수 없는 소규모 뉴스 생산자끼리 ‘나머지 10%’를 두고 치열하게 다퉈야 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독립 언론사는 언론의 가치를 믿는 기부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종이 신문은 토요판만 배달되는 상황도 예상 가능하다. 뉴스 수용자는 소비자로 간주될 뿐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지역 공동체’다. 기술 적용은 더디고 시민 참여가 적극적일 때를 말한다. 시민들이 앞장서서 의제를 설정하고 각종 참여 활동을 통해 사회적인 신뢰도가 낮은 정부·공공기관·기업을 감시하는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이때에도 기존 언론사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독자와 광고 수익이 떨어져 전통적인 수익 모델을 유지하기 버거워진다. 독자들은 ‘권력을 가진 자’로 간주되는 기존 언론 종사자들을 불신하고, 그 대신 전문가의 의견을 중시한다.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소수의 스타 기자가 프리랜서로 명성을 얻을 수 있다. 시민들이 탐사 전문기자를 지원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에 나선다. 신문사 편집국이 프리랜서 외주 체제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요약하면, 언론사의 존립 근거는 갈수록 약화되는 가운데 ‘사회 감시견’ 역할을 하는 기자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집단 지성’이다. 기술 혁신이 급격히 이뤄지고 시민 참여도 적극적일 때다. 거대 IT 기업의 주문형 비디오·생중계 콘텐츠와 시민 저널리즘이 공존하는 양상이 예측된다. 상업성과 시민사회의 지성이 혼재하는 것이다. 이때에도 기존 언론사의 전망은 밝지 않다. 일부 언론사는 작고 혁신적인 기업을 사들여 시장 지위를 잃지 않을 수 있지만 낡고 느린 데다 구조가 불안정한 대형 언론사는 쓸모 없게 된다. 소수의 신문·잡지사가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발행을 유지할 수는 있다. 뉴스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작성하고 시민 기자가 늘어난다. 기존의 직업 기자는 수가 줄어들면서 데이터 분석·팩트 체크·큐레이팅·포럼 조직 등으로 역할이 바뀐다.

네 번째 시나리오는 ‘적자생존’이다. 기술 적용이 더디고 시민 참여 또한 적극적이지 않을 때, 독자의 새로운 트렌드와 눈높이에 맞춰나가는 언론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현재 상황에서 변화가 가장 적은 쪽을 전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때에도 시민들은 언론에 투명성과 높은 수준을 기대하며 특정 언론사 브랜드만 보고 충성 독자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기존 언론사는 독자를 바라보는 방식을 개선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보고서는 4가지 시나리오를 넘어서는 함의를 전한다. 넷 중 셋의 시나리오에서 기존 언론사의 생존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현 상태가 최대한 유지되는 마지막 시나리오에서도 독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고 했다. 보고서는 이를 “명백한 경고”라고 밝혔다. 10년 후 기술 변화가 급격하든 그렇지 않든, 시민 참여가 적극적이든 그렇지 않든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게 기성 언론의 현실이라는 메시지다.


차준철|디지털뉴스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