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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디어 뉴스

아프간 여성의 시간

 아프가니스탄은 여성 인권이 열악한 곳으로 악명 높습니다. 1990년대 아프간을 정권을 장악했던 탈레반은 여성에 대한 탄압 정책으로 아프간을 수십년은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2010년 10월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에 코와 귀가 잘린 아프간 여성 아이샤(20)의 충격적인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아이샤는 12살때 아버지에 의해 탈레반 전사의 아내로 팔려갔다가 비인간적 대우를 참지 못하고 탈출했다가 붙잡혀 변을 당했지요. 카불의 수용소에서 살던 그녀는 다행히 그곳을 탈출해 지금은 성형수술을 통해서 정상의 얼굴을 되찾았습니다.
 



 얼마전 봤던 BBC 다큐멘터리가 생각나는데요, 아프간 태생의 한 영국 여성이 고향인 아프간으로 돌아가 아프간 여성의 생활상을 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진행자가 화상전문 병원에 찾아갔는데요, 처참하게 다친 여성들이 매우 많더군요. 그들은 시댁과 남편의 학대, 빈곤 등을 견디지 못하고 분신을 택한 사람들이었어요.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는 강제 결혼과 학대 우울증에 고통받는 아프간 여성들이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분신 자살이라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2001년 미군이 아프간에 들어왔지만 탈레반 치하나 지금이나 현실은 개선된 것이 없는 셈이지요.

 이런 아프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다룬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BBC 트러스트에 의해 시작된 ‘아프간 여성의 시간(Afghan Woman's Hour)’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2005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운영됐던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아프간 태생의 자르구나 카르가르라는 여성입니다. 카르가르는 어렸을 때 수도 카불을 떠나 영국과 파키스탄에서 생활했고 10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집 울타리 밖으로는 좀처럼 새어나오지 않는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그 사연들이 담긴 책 ‘자리에게(Dear Zari)’가 출간됐습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실린 카르가르의 기고문을 통해 한번 이들의 사연을 볼까요?

 

 라디오에 소개된 여성의 사연들은 하나같이 영화같지만 아프간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것이 참 슬픕니다. 책을 시작하는 사연인 와즈마의 이야기는 이렇스니다. 와즈마는 17세에 결혼했습니다. 남편 와히드와는 중매 결혼을 한 것이었지만 친절하고 결혼 생활도 만족할만했죠. 1살 된 딸 파라도 있었고요. 당시는 내전 상황이었고 언제라도 로켓 폭탄의 공격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남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불행히도 와즈마에게도 끔찍한 현실로 다가왔어요. 로켓 공격으로 다리를 잃은 것이죠.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과 딸은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과 딸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다시 만난 남편은 “어떻게 다리 없는 와이프와 살 수 있겠느냐”고 하더랍니다. 그녀는 그렇게 버려진 겁니다.

 우울하지만 현실인 이런 이야기들이 아프간 여성들에겐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소식은 ‘아프간 여성의 시간’을 통해 방송됐습니다. 

                                                                                                         (출처: BBC Trust 홈페이지 캡쳐)

 그렇다고 우울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탈레반의 폭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람들은 집도 다시 짓기 시작했고요 이란과 파키스탄으로 떠났던 난민들도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물론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궁핍하지만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야하는 마굴의 사연도 그렇습니다. 보통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여성이 남편의 남자 형제와 다시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굴의 경우는 마굴의 남편은 남자 형제가 없었다는군요. 자신과 아이들의 생계를 위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길 거리에서 구걸하는 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마굴은 연을 날리는 소년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답니다. 연날리기는 아프간 남성과 소년들에게 전통적인 놀이였는데 탈레반에 의해서 금지됐었죠. 하지만 탈레반 정권이 물러난 이후 다시 인기가 있어졌다고 해요. 여성들이 연을 날리지 않지만 아버지로가 연 만드는 것을 도왔던 적이 있는 마굴은 연을 만들어 팔아보자는 생각을 했고요 지금은 생계를 꾸릴 만큼의 돈을 벌고 있다고 하는군요.

 
 아, 여성 차별이 심한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취재했느냐고요? 매주 20여명의 여성 기자들이 스토리를 모으고 인터뷰를 했다고 하는군요. 여러 사회적·경제적 배경에 처해있는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 핸드북도 마련해서 배포됐다고 하고요.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책도 읽어 보고 싶군요.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