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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옴부즈만]‘종북 프레임’에 맞선 분투

엄주웅 |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지난달 29일 서울시가 ‘지역별 건강격차 분석 결과’를 발표하자 다음날 신문들은 건강 양극화가 심화했음을 일제히 보도했다. 경향을 비롯해 대부분의 신문들이 “강북지역의 사망률이 강남보다 높다”고 제목을 뽑아 소식을 전달했는데, 어떤 신문(ㅈ일보)은 정반대로 접근했다. “강남 3구 살거나 고학력일수록 사망률 낮다.” 이런 제목을 뽑은 편집자의 의도가 강남북 주민간의 위화감을 줄여보자는 뜻이라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이미 강남북간 지역격차라는 기존의 인식 틀 안에서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남 사람이 오래 산다’고 돌려 말해도, 고학력 변수를 끼워넣어 ‘물타기’를 해도 ‘강북 사람은 일찍 죽는다’라고 알아듣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이른바 ‘프레임 효과’가 작용하는 셈이다.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10일 바라본 서울 강남북 풍경. (경향신문DB)



그런데 이 ㅈ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이 집요하게 매달리며 공론장에 확산시키려는 프레임이 있다. 바로 통합진보당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종북’ 논란이다. 당초 통진당 사태는 북한에 대한 입장과는 상관없이 절차적 민주주의와 폭력행위에 관한 문제였으나, 보수언론들은 통진당 구성원들의 과거 행적과 연결시켜 이를 종북 문제로 치환해 한 달 넘게 대서특필하고 있다. 급기야는 6월 초 국회 개원을 앞두고 ‘종북 좌파가 국회에 입성’하면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뚫릴 것처럼 공포를 환기하며 해당자의 제명과 야권연대의 파기를 연일 주문하고 있다.


옛 당권파를 강하게 비판해 왔던 경향은 이런 종북 소동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 긋기를 해왔다. 즉, “그들에게 부정 경선의 책임을 묻는 것과 종북주의라는 굴레를 씌워 의원 자격을 문제 삼는 것은 별개의 문제”(5월25일 사설)라며 “설사 종북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이념적 차이를 이유로 의원직 박탈을 주장하는 것은 초법적 발상”이라고 단언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입장을 새로이 정리하겠다는 통진당 혁신비대위의 움직임과 함께 당초 논란의 빌미를 준 이상규 당선자의 “북 세습 납득 안되고, 북핵 반대”(5월26일)라는 달라진 언행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보수신문들이 “종북 주사파 오늘부터 국회의원”이라고 선정적인 제목을 뽑은 날에도 “문대성·김형태·이석기·김재연, 오늘부터 국회의원”이라며 결격대상이 네 사람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소수 진보 언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문방송에 확산된 종북 논란은 ‘프레임 효과’를 선점한 탓인지, MB에 이어 안철수, 박근혜까지 가세해 종북주의가 우리 정치사회에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것처럼 여론몰이에 편승하고 나섰다. 그런데 MB의 발언에 대해 “임기말 위기상황을 넘기려는 꼼수”(5월29일)라고 비판한 경향은 31일 안철수 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진보정당, 북한에만 다른 잣대 동의 못해”(31일)라는 제목으로 1면 머리에 배치했다. 그것만 놓고 보면 보수지들과 거의 비슷한 편집이었다.


이날 안철수 원장의 부산대 강연은 그가 과연 대선출마를 표명할 것인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행사였는데 알맹이가 없었다. 통진당 관련 발언은 미리 준비한 듯한 내용이긴 하나 강연중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고, 또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밝힌 그의 종전 입장에 비추어 볼 때 뉴스가치가 큰 의외의 발언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일부 언론은 그가 한편으론 색깔론 확산을 경계한 데에 대해서 양비론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는데, 경향의 편집에서는 그 부분도 부각되지 않았다. 안 원장이 민감한 정치현안에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1면 머리로 올리기에는 부족하지 않은가 싶다.


다음날 경향은 민주당이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기 위해 자격심사청구제도를 언급하고, 이에 새누리당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여야,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로 퇴출”(6월1일 4면)이라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이 역시 보수 신문의 “여야, 두 의원 제명 급물살”이라는 보도 시각과 궤를 같이하는 성급한 보도였다. 경향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의석수를 합하면 재적의원 3분의 2 조건은 충족된다”며 “자격심사 절차에 착수하면 이·김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실상은 민주당의 검토 용의에는 여러가지 조건이 붙어 있고, 무엇보다 제명 절차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보수언론 일각에서조차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검찰 조사를 지켜본 후) 합법·순리로 대처해야 한다”(중앙일보 5월31일)고 주문했을까. 


‘종북 프레임’에 대항하려는 경향의 분투는 가상하지만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가장 좋은 대처방법은 강력한 다른 프레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허수아비 논리와도 같은 종북 논란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것과 아울러 통진당 사태로 인해 공론장에서 밀려난 민생, 인권, 복지 등 시대적 의제를 적극 발굴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