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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옴부즈만]학벌구조 문제 빠진 ‘아이들 살리기’

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회문제의 주된 원인을 찾는 방법을 단순화시켜 말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람에서 찾는 것이다. 문제가 지엽적이거나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한되어 있을 경우 많이 적용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거나 교체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방법론에 맞닿아 있다. 다른 하나는 문제의 근원을 사회구조에서 찾는 방식인데 주로 사회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적용된다. 어떤 문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이며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구조가 배태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을 살리는 7가지 약속’에 시민들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한다. 우리의 교육환경은 누가 보아도 비정상적임이 틀림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캠페인이 서명을 넘어 범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교육문제의 근원을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10대가 아프다] 일러스트 (경향신문DB)



캠페인은 부모들을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는 부모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일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교육환경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도 않는다. 실천이 어려운 것은 이 문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적이며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들만큼 현재의 교육문제를 생생히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일상에서 아이들의 고통과 좌절을 목도 한다. 그럼에도 그 같은 현실을 다수의 부모들이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캠페인은 “서로 이 정도는 지키자는 취지”라고 한다. 기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부모들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가?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사교육시장으로 내모는 이유는 그들의 경험이,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그길 이외에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직업을 선택할 때 거의 패닉(공황상태) 수준으로 안정성에 집착”한다고 한다. 이것을 부모들이나 아이들의 ‘창의성 부족’이나 ‘욕심’ 때문이라 할 수 있을까? 다수의 경우는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는 직업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바꾸어 말해 경제적인 생존을 안정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성적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안정적 직업이 부족하다.


어느 대학을 나와도, 혹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면, 어느 순간 실패하더라도 다시 노력하면 언제든 재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일정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어떤 직장에서도 불안정한 고용상태로 인해 불안에 떨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경제사회적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어느 부모가 어린 자식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몰겠는가?


우리 사회의 학벌구조는 그 자체로 권력구조이다. 봉건적 학연주의가 자본주의 발전과정으로 융합되면서 학연체계를 내포한 독특한 사회경제적 권력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제도로, 문화로, 심지어 규범으로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대졸자로 입사를 제한하고, 그것도 서울소재대학과 지방대, 명문대 비명문대로 가르고, 학벌이 평생 자신의 간판과 연줄이 되는 사회에서 대학입시를 단판승부로 여기고 몰입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손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7가지 약속’과 더불어 구조로부터 배태된 제도와 문화를 가능한 것부터 하나둘 바꾸어 가는 실천을 병행하자. 예를 들어 모든 입사시험에서 학적, 출신지역, 연령 등을 고려하지 않는 블라인드 리뷰를 제도화시키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고 패자들의 부활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만 되어도 입시위주의 공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역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공정하게 실력과 인격으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며 실패했더라도 새로운 기회가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사람들 간 출신학교, 고향, 나이 등을 캐묻고 그에 따라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사회발전을 저해한다는 캠페인도 동시에 진행하면 좋을 것이다. 직업안정성을 도모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 같은 일이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살리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실천을 유도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수십년 이상 걸릴 수도 있는 문제이다. 단기간의 캠페인으로는 성과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긴 안목으로 지침 없이 실천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