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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정치인 말고 시민의제에 초점을

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언론을 ‘팔로어(follower)’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체적으로 뉴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메이커들을 따라다니며 보도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뉴스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뉴스를 생산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주장은 언론을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는 면에서 문제가 있다. 언론은 기사를 발굴하고 선택하며 의견을 개진한다는 점에서 단순전달체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팔로어’라는 주장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특정 정치세력과 정치적 유대감을 보이는 언론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치인들의 의제가 곧바로 언론의 의제로 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언론이 ‘팔로어’가 될 경우 정치인들의 언론플레이에 얼마든 휘말릴 수 있다. 선거시기가 되면 정치세력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의제선점 싸움을 벌인다. 어떤 의제가 유권자들의 선택기준이 되는가에 따라 선거결과가 달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세력들은 기자회견이나 대변인 논평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이슈들을 제기한다. 이를 언론이 받아 보도하게 되면 유권자들의 이목은 자연스레 해당 의제로 모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는 와중에 민생문제 등 정작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의제들이 선거 국면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향신문DB)


정치권이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여당은 ‘종북’문제를 제기하고 야당은 이를 ‘매카시즘’이라 비판한다. 경향신문은 이로 인해 연말 대선에서 정책대결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우려한다. “이념전은 결국 12월 대선을 향한다”고 지적하면서 “대선이 200일도 남지 않았는데 여야가 건전한 정책과 비전 경쟁이 아니라 사상검증, 색깔 논쟁으로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그럼에도 경향신문은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이념논쟁을 보도하다 보니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논쟁이 확대 재생산되는 데 본의 아니게 기여하게 되는 모습도 보인다. 복잡한 현실정치가, 그리고 정치담론을 주도하는 언론들의 정치구도가 경향신문이 바라는 정책대결을 어렵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총선처럼 대선에서도 제대로 된 정책대결이 없는 선거를 치러야 하는가?


경향이 대안을 찾지 못하는 것은 이유야 어떻든 여전히 기성정치인들의 의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기성정치인 중심 보도의 타성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의 정략적 이슈에 적절히 대응하는 한편, 언론의 본질적 존재이유인 유권자들의 필요를 보도하는 것으로 초점을 바꾸는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미국의 시민저널리즘운동은 ‘시민의제에 초점 맞추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소시민들이 스스로 언론인이 되어 기성정치와 언론의 의제들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풀뿌리 의제들을 개발하고 보도하는 저널리즘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정치인들의 행진을 뒤따르기보다 스스로 행진하기 원한다”. 기성 언론이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니 스스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민의제 만들기’는 일정한 수정만 이루어진다면 경향신문이 활용할 수 있다. 우선 유권자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필요한 정책을 구체화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이러한 정책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니 정책을 내어 놓으라 요구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의제 설정의 주도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기준의제를 설정하고 정치인들이 답변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유권자들과 인터넷 사이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으로 소통하며 논의하여 유권자 의제를 만들면 된다. 필요한 경우 합리적 정책이 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시민저널리즘 운동은 소규모 언론들이 중심이 되어 어려움이 많았다. 경향신문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전문 언론인들이 포진한 대규모 언론이라는 점에서 상황이 다를 것이다. 특히 인터넷에 기반을 둔 수평적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과 주요 일간지가 중심이 된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이 동시에 기능하게 되어 사회적 공명을 일으키기 쉬울 것으로 보인다. 시민저널리즘의 정신이 일반 시민들과 전문 언론인들의 결합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유권자 중심의 정책보도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경향은 선거 때마다 정책보도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선거가 임박해 시작한데다가 복잡한 정책들을 제한된 지면에서 다루다 보니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데 한계가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논의의 수준과 이해의 폭이 높고 넓어질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의 팔로어가 되어 우리의 의제를 만들어 보자. 그것으로 선택의 기준을 삼아 그에 부합하는 대통령을 선출해 보자. 주권재민의 정신을 올바로 구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