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 |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한국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아시안게임(1986년) 및 서울올림픽(1988년) 개최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두 행사 이후 언론인들은 ‘우리대표팀과 선수들만의 승리를 쫓아 국민감격을 부채질한 애국보도’ ‘스포츠전문지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대담한 지면편집’ ‘외국 선수들의 이야기 실종’ ‘선수들이 흘린 땀과 노력에 대한 무관심’ ‘외국의 체육정책 내용 부재’ 등을 스포츠 보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25년이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보도의 경우에도 당시에 지적된 부적절한 스포츠 저널리즘 관행이 또 다시 반복되고 있다(증면을 통한 과감한 편집은 제외).
먼저, 스트레이트기사 중심의 뉴스생산이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경기결과를 예측하거나 성적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일부 종목(체조·수영·복싱)을 보다 눈여겨볼 수 있는 스포츠 과학(27일)을 소개했지만 런던올림픽을 통해 다른 나라와 스포츠에 대한 학습을 돕는 기획·탐사 뉴스는 없었다. 가령, 자메이카와 케냐의 육상, 유럽의 펜싱·핸드볼, 과거 영연방 국가들의 하키, 처녀 출전한 국가와 선수 등 특정 종목과 관련한 외국의 스포츠 정책과 역사적 배경을 짚어주는 보도가 아쉬웠다.
둘째, 한국대표에게만 많은 관심을 보이는 ‘편식’ 관행을 되풀이했다. 우리의 금메달 전망(28일 5면)과 소식 그리고 심판의 오심(1일 5면)에 높은 뉴스 가치를 할애했다. 물론 패튼(28일) 펠프스(2일) 잭슨(3일) 해리슨(4일) 블레이크(10일) 실즈(11일)에 관한 기사는 종합면에, 이슬람문화가 강제하는 ‘금녀’의 벽을 뛰어 넘은 알 말키(카타르)와 샤히르카니(사우디), 인종학살국 수단 출신인 육상선수 로몽(미국), 장애를 극복한 ‘외팔’ 탁구선수 파르티카(폴란드)의 감동이야기는 스포츠면에 게재했다. 하지만 이들 기사에 배정된 지면은 적었다.
선수들의 공식인터뷰를 최대한 이용하고 외국 통신의 기사를 주의 깊게 살핀다면 독자의 흥미를 돋울 수 있는 숨은 이야기를 더 개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령 호주 원주민 출신 허들 올림픽챔피언 프리먼, 인도의 쌍둥이 엄마 복서 콤, 분쟁과 죽음의 땅 소말리아의 육상선수 파라, 기록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국가대표들 등등 진한 감동을 전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한국 여자 펜싱 플뢰레 단체팀이 동메달을 따낸 뒤 기쁨을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DB)
셋째, 활자 매체의 고민과 선수탐구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부족했다. 각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이 어떤 훈련과정을 거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경기 자체는 텔레비전을 통해 즐기면 된다. 독자들은 신문에서 경기 외적인 화제들이나 선수들의 인간드라마에 관한 내용들을 읽고 싶어 한다.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종목의 수는 22개이고 출전 선수는 249명이다. 체조(양학선, 손연재) 펜싱(신아람) 축구 이외에도 다양한 종목과 선수에 관한 이야기 개발이 가능한데 그리하지 못했다.
넷째, 신문매체의 강점인 비평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과도한 상업화로 인한 올림픽 정신의 실종, 스포츠 이벤트로 전락한 올림픽, 국가대표 엘리트 중심의 스포츠 지원정책, 텔레비전의 과도한 올림픽 방송 편성 등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많은 올림픽 뉴스로 인해 여당과 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과 경선 후보들의 자질 검증, 새누리당 ‘돈 공천’ 비리, 한강과 낙동강의 ‘독성 녹조’ 등 국가의 미래와 시민의 생명에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깊이 있는 진단과 평가가 실종된 방송뉴스의 현주소를 강도 높게 비판했어야 했다.
경향은 방송과 달리 올림픽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주요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사설 경비용역업체의 노사분규 개입에 특히 주목했다. 30일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의 국회운영위 발언 이후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1면에서 용역업체의 폭력에 관한 실상을 고발했다. 또한 녹조주의보와 팔당호 취수원에서의 독성물질 검출에도 높은 뉴스가치를 부여했다. 텔레비전의 과도한 올림픽 중계로 인해 방송의 정치권에 대한 환경감시 기능이 거의 정지된 시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경향의 뉴스가치 판단은 적절했다.
미디어(텔레비전, 신문, 인터넷) 정치정보 이용이 정치 신뢰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한 연구들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한 정치정보 습득이 유권자의 신뢰 평가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한다. 반면에 신문을 통해 정치정보를 많이 습득할수록 정치에 대해 덜 냉소적이고 국가권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정치 신뢰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신문은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 정치환경감시에 ‘올인’하고 올림픽 경기 중계와 금메달 소식 전달은 방송과 인터넷에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부적절한 취재관행에 기댄 런던올림픽 소식보다는 여당과 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과정과 후보들의 정책 및 자질 검증, 한강과 낙동강 녹조의 발생 원인, 새누리당의 돈 공천 비리, 정부의 세법개정안과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갖는 정치적 의미 등에 관한 해석을 돕는 맥락적 저널리즘(contextual journalism) 실천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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