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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옴부즈만]한·일 문제 본질을 알고 싶다

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일 간 과거사를 둘러싼 분쟁은 외교적 갈등과 양국의 국내 정치상황이 중첩되는 양상을 보이며 나타나곤 했다. 이번에도 양국 정치인들의 자국 정치와 관련된 정략적 의도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그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작은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적 독도 방문과 일본 국왕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 요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지지하는 여론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여론도 있다. 전자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의지를 천명한 것” 등의 의견이며 후자는 대체로 “레임덕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비판이다. 일본에서도 총선을 앞둔 노다 정부가 일본 내의 악화된 대한여론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중국과의 센카쿠열도 문제까지 불거져 강경발언과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경향신문의 보도도 정략적 활용이라는 맥락을 따르고 있다. 양국 모두 민족주의 정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전형적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를 정치 이용 말라” “한·중·일 영토 분쟁은 국내 결속용” 등의 기사가 그렇다. 경향은 이 대통령의 행보에 보다 집중해 외교적으로 적절치 못했다는 데 무게중심을 둔다. “일본인 절반 한국에 대한 감정 더 악화” “MB의 자충수로 최악상황 불러” 등의 보도를 한다. 여기에 “임기 말 MB 정부, 외교는 없고 충돌만”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이용을 경계하는 논조를 보인다.


정치인들의 정략적 의도를 경계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임무이다. 특히 정권교체기 언론이 정치인들의 의제선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적 맥락에 집중하다 보니 한·일관계라는 본질적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한·일관계의 본질은 독도는 우리 영토라는 사실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들에 관한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일본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뻔뻔함이었다. 명백한 우리 영토를 자신의 영토라 하고, 식민지 침탈을 미화하는가 하면,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사죄 한마디 없다. 대통령의 정략적 의도가 있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 때문에 불필요한 외교적 손실이 있다면 그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한·일 간 문제의 근원이 일본에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안이다.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출처: 경향DB)



한·일관계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했다는 문제도 있다. 일본의 억지가, 억지가 아닌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해가 일본해로 뒤바뀐 상황을 겪고 있음에도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저 막연히 일본의 국력이 우리나라보다 강하니 그렇지 않겠냐 정도의 무책임한 소리들을 듣고 있을 뿐이다.


노다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유감 서한을 보낸 뒤 정부 당국자는 “영유권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고지도, 고사료를 모으고, 국제법적 논리를 보다 확고히 하는 활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의 내지 끝자락을 차지해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언급은, 그렇게 준비한 내용이 대체 무엇이기에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라는 일까지 겪게 되었는지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일본의 분쟁지역화 의도라고만 말하기에는 변명이 옹색하다. 일본이 한·일관계와 관련하여 국제사회를 향해 대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한·일관계사, 그리고 우리와 일본의 구체적 근거와 논리일 것이다. 독도 문제, 위안부를 포함한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 등 한·일 간 분쟁의 근원들이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의 문제로부터 기인한다는 학계의 평가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는 국민은 많지 않다.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에 가 ‘통석의 염’ 소리를 들으며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는데, 고쳐놓은 버르장머리의 내용은 무엇인지, 노무현 대통령이 선포한 외교 전쟁의 내용과 결과는 무엇인지 국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한·일 간 문제 해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언론만 보아서는 이해할 방법이 없다. 한·일관계에 관한 충분한 자료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감성적 애국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한·일관계는 진실의 여러 부분이 사상되고 왜곡되어 있다. 일본의 주장에는 이제 자신감마저 묻어나는 것 같다. 왜곡된 역사를 후대에 가르치고, 성사되지는 못할지라도 영토문제를 국제기구에 제소까지 하겠다고 한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진실을 추구하고 알리는 길밖에 없다. 이는 언론이 우려하는 정치인들의 정략적 이용을 방지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