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세력의 임기가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지만 방송 길들이기를 향한 권력의 열망은 식지 않았다.
지난해 말 KBS <추적 60분>이 불방사태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이번에는 MBC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PD수첩」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다.
소망교회의 문제점, 대통령 내외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국가조찬기도회 등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아이템을 취재하던 제작진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전보되거나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MBC가 들썩이는 이때, 전국언론노조는 이달 초 KBS 이강택 PD(49·사진)를 신임위원장으로 선출하고 권력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15일 서울 태평로 전국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PD수첩」 사태는 정부·언론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불러오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MBC를 지키는 데 성공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지켜낼 수 있겠지만 여기서 낙담한다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그간 언론인들은 다른 언론사의 문제에 대해선 팔짱끼고 구경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MBC·KBS·SBS 노조와 함께 공동투쟁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언론정책이 어느 지점에 와 있다고 판단하나.
"이명박 정권은 1단계로 지난 3년간 KBS·연합뉴스 등 공영적 성격의 언론사를 낙하산 사장 투입, 조직 개편 등을 통해 관영화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연임으로 시작될 2단계에선 완전히 장악되지 않은 MBC를 전면적으로 장악하고, 조선·중앙·동아·매일경제 종합편성채널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할 것이다. 이를 통해 총선·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도모한다는 것이 2단계 언론장악의 핵심이다."
-언론노조가 가장 우선시하는 사안은 어떤 것인가.
"MBC 장악 시도를 막아내야 한다. 16일 「PD수첩」 사수와 언론자유수호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한다. 야 5당과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현업 3단체(언론노조·기자협회·PD연합회) 등이 동참할 예정이다.
과거에는 한 언론사에 문제가 터지면 타사 노동자들은 팔짱끼고 구경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러다가 각개격파를 당했다. 「PD수첩」이 당하고 있는 일도 이미 <추적60분>과 <시사투나잇>이 겪었던 것 아닌가. 언론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언론노조는 방송3사 노조가 함께하는 공동투쟁위원회를 발족할 것이다."
-'「PD수첩」 공대위'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PD수첩」 사태는 두 가지 상징성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권의 MBC 장악을 상징하고, 언론계 전체에는 저널리즘의 위축과 언론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의 위기를 의미한다.
「PD수첩」을 지키는 것은 정권과의 싸움에서 전체 지형과 국면을 바꿀 수 있는 결절점이 되리라 본다. 지금까지 뒷걸음질하던 언론인들이 스크럼을 새로 짜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기회인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더 밀린다면 이후에 종편 특혜를 저지하는 싸움이 제대로 되겠는가. 공대위는 연대를 강화하고 언론인들의 사기를 살려내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노조위원장 선거 공약으로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해체도 내걸었다.
"방통위는 각종 방송정책권을 언론장악에 활용했다. 명목상 합의제 기구지만 일반 행정부처처럼 독임제로 운영되고 있다. 탈 규제라는 명목으로 자본과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공적 규제를 풀어버리기도 했다.
최소한의 규제에 그쳐야 하는 방통심의위도 사실상 검열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언론인들이 민주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저널리즘이 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막아왔다.
이런 기관은 존재해야 할 필요가 없다. 구조와 운영, 인적구성 모든 면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기 전에는 힘들지 않겠나.
"꼭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라. 이 정권은 취임 1년 동안 방송사 사장 교체도 제대로 못했다. 촛불시민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정권이 바뀌어야 하지만 그 전이라도 우리가 단결하면 많은 것을 저지할 수 있다. 종편에 출자한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고, 종편의 방송 내용을 감시한다면 현재 지형에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언론인들은 ‘퇴각의 관성’에 젖어 변화에 대한 상상력이 고갈됐다. 이런 관성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조차 못하게 만든다. 비관하고 낙담하기 전에 우리가 전력을 100% 발휘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후배·동료 언론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역사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자. 세상은 변한다. 아무리 강력한 세력도 결국 사멸한다. 우리가 일어서지 않는다면 이 시기는 모두에게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정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견지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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