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들이 종합편성 방송채널에 주요 주주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 건강권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약업계의 이해를 반영한 프로그램의 제작 등이 의약품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제약사는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고 종편 참여를 결정해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 역시 종편의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여를 결정해 투자가 실패할 경우 그 부담이 학생들에게 전가될 전망이다.
◇“의약품 권하는 프로그램 양산 우려”=현행법상 제약회사의 방송투자는 합법이지만 국민의 건강권과 직접 연관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제약회사가 주요주주로 있는 종편이 과연 약물 오남용 문제 등을 제대로 짚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제약업계를 미화하는 내용의 드라마나, 특정약을 복용하는 제품 간접광고(PPL)가 등장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형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정책국장은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재정 중 의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보다 10%포인트 높을 정도로 약물 오남용이 심각하다”며 “방송에 제약업계의 이해가 반영된 프로그램이 방영될 경우 약물 오남용 풍토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중인 전문의약품 광고제한 규제완화까지 이뤄질 경우 그 폐해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제약회사 화이자는 1990년대까지 업계 중위권이었으나 비아그라 등 의약품을 무차별적으로 광고해 세계 1위 제약회사로 올라섰다.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약인 리피토의 연간 광고비용은 코카콜라 광고비보다 많다. 결국 광고비 증가는 의약품 가격 인상을 불러와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2002년 포츈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중 제약회사 10개의 순이익이 나머지 490개보다 많았다”며 “전문의약품 광고까지 허용될 경우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제약업계의 배만 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사, 공시 안하고 오너가 참여 결정=종편 참여 제약사들의 절차상 하자도 제기되고 있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동아제약과 녹십자, 일동제약은 종편 참여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 영역에 뛰어들 경우 상법상 기업의 사업목적에 관련 분야를 추가하는 사업 정관 변경 공시를 해야 한다”며 “그러나 이들 제약사는 아직까지 공시를 하지 않아 공시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 사업 목적 추가는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쳐 정관을 변경하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 사업 규모가 크지 않거나 미래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이사회를 거쳐 정관 변경을 의결하고 공시를 한다. 그러나 취재 결과 동아제약과 녹십자, 일동제약은 종편 참여와 관련된 이사회 개최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들은 “아마 하지 않았겠느냐” “잘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종편 참여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종편에 최종 투자를 하지 않았고 의사만 밝힌 상황이라 실제 투자액이 집행될 때 공시를 해도 공시 위반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제약사들의 종편 참여는 ‘오너’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종편 참여 결정에 대해 업체에서는 “윗선에서 결정된 것이다” “아직까지 확인할 수 없다” 등 반응을 보였다. 이들 업체는 모두 오너경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동아제약의 경우 강신호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10.89%, 녹십자의 경우 허일섭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녹십자홀딩스의 주식 48.92%를 보유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윤원영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29.79%를 보유하고 있다. 종편 투자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피해는 주주들이 입게 되는 것이어서 ‘오너 경영’의 문제점에 대한 논란도 확산될 전망이다.
◇대학들도 잇단 참여=고려대 산학협력단이 동아일보 종합편성채널 컨소시엄에 5억원을 투자하기로(경향신문 1월7일자 1면 보도)한 데 이어 한국외국어대도 동아일보 컨소시엄의 요청을 받아 수천만원을 투자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숙명여대는 종편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중앙미디어네트워크와 한식 세계화 관련 MOU를 맺었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투자금이 교비회계에서 지출될지, 법인회계에서 지출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비회계를 택하면 등록금을 포함해 학내에서 벌어들인 돈에서 지출되고, 법인회계의 경우 재단 예산에서 나가게 된다. 이 관계자는 “방송제작 실무실습, 차세대 미디어 기술 및 콘텐츠 개발 등이 MOU 내용”이라며 “종편이 방송시장에서 파괴력을 갖게 되면 학생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숙명여대는 지난해 11월 중앙미디어네트워크와 ‘방송분야 업무제휴 및 한식 세계화 콘텐츠 교류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외국인 CEO 한식 만들기’ 시리즈 등 한식 관련 프로그램을 공동 제작할 계획이다.
그러나 재정 부족을 이유로 등록금 인상을 언급하고 정부 지원도 받는 대학들이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에 투자하는 데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은 “대학의 투자가 실패할 경우 학생들이 피해를 그대로 떠안게 된다”며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종편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대학 관계자는 “종편 언론사들이 서울지역의 거의 모든 사립대에 컨소시엄 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우리는 투자가치를 제로(0)로 보고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주현·김준일·임아영·조미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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