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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중징계당한 KBS 김용진 기자, “권력 감시하는 방송은 시도조차 않겠다는 것”

‘막걸리 보안법의 부활’ ‘징계 플루’. 

KBS 내부 구성원들이 최근 사측의 묻지마식 징계를 두고 부르는 말이다. 사측은 최근 언론노조 KBS본부에 대해 조합 집행부 뿐만 아니라 평조합원까지 60명을 징계하겠다며 명단을 통보했다. 사측은 내부 게시판 댓글과 한줄짜리 트위터 글까지 문제 삼아 감봉 등 징계를 내리고 있다.

김용진 KBS 부산총국 울산방송국 기자도 최근 사측으로부터 정직 4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과잉홍보 방송을 비판한 ‘나는 KBS의 영향력이 두렵다’는 제목의 글을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게 문제됐다. 사측은 ‘KBS 명예와 이미지 실추’를 징계 사유로 들었다.




김 기자에 대한 징계는 정권홍보방송을 위해 여념없는 상층부의 심기를 거스른 꽤심죄를 건 것에다 사내 언로와 저항을 옥죄기 위한 의도적인 탄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외부 기고 때문에 중징계를 당한 이번 사례는 언론자유와 직결된 사건으로 규정하는 평가도 있다.

김 기자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징계는 KBS를 대외적으로 희화화하고, 내부적으로는 기강을 흐트러트리는 자해 행위”라며 “KBS가 앞장서서 수호해야 할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KBS가 스스로 틀어막고, 짓밟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KBS는 말로는 공영방송을 외치지만 뜻은 국영 또는 어용방송”이라며 “KBS뿐만 아니라 MBC, SBS 등 방송사들의 전반적인 논조가 기득권 위주로, 평화보다는 대결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이병순 전 사장 취임 직후인 2008년 9월 탐사보도팀장에서 일반 팀원으로 발령난 뒤 부산총국으로 이어 울산방송국으로 한달새 3번 전보 발령됐다. 팀원 6명도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이명박 정부 첫 내각 재산검증, 공기업 인사실태 등 권력비판 탐사보도에 대한 보복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 기자가 이끈 KBS 탐사보도팀은 2005년 출범 후 한국기자상 3회, 방송대상 2회, 이달의 기자상 18회,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 5회 등을 수상한 팀이었다.

다음은 김 기자와의 일문일답.

- 사측이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을 문제삼아 중징계했는데, 심정은 어떤가.

“정당성이 없는 징계이기 때문에 징계 자체는 대수롭지 않다. 현정권 들어서 KBS 안에서 징계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내부 게시판의 댓글을 징계하더니 급기야 트위트에 올린 글 가지고도 정직 6개월을 선고하는 게 현재 KBS의 현주소다. 다만 KBS가 앞장서서 수호해야 할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KBS가 스스로 틀어막고, 짓밟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 징계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라 보는가.

“사규를 상식에 어긋나게 자의적으로 갖다대면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매체비평 수준의 기고문에 정직 4개월을 결정한 것은 어떤 절박한 사유가 있었을 것이다. 징계에 관여한 사람들은 그것이 충성심의 과시였는지, 내부 언로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알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징계는 KBS를 대외적으로 희화화하고, 내부적으로는 기강을 흐트러트리는 자해 행위라고 생각한다. 지금 KBS는 전사적으로 수신료 현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도 큰 틀에서는 수신료가 반드시 현실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금 KBS의 행태는 수신료 현실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종의 해사 행위다.”

- KBS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적 독립성을 현저하게 상실했기 때문이다. 말로는 ‘국민의 방송’ ‘시청자가 주인’이라고 하지만 뉴스·프로그램을 기획·취재·편성ㅎ랄 때 언젠가부터 주인이 아닌 다른 곳을 처다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예를 들어, G20이 중요하더라도 그 행사에 특집으로 할애한 3300분은 1시간짜리 프로그램 55개를 만들 분량이다. 반면 한시간짜리 천안함이나 4대강 프로그램은 방송 내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KBS의 편성정책이 얼마나 뒤틀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직원들에 대한 무차별적 징계도 이런 뒤틀림의 연장선상에 있다. 저널리즘의 원칙, 인사의 원칙은 뒷전으로 밀리고 뭔가 별도의 의도가 배후에 개입하면서 그런 방향으로 관성이 붙어 걷잡을 수없이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 김인규 사장체제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두말할 나위 없이 대통령 특보 출신이 공영방송 사장으로 온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김인규 체제의 문제는 김인규 사장 본인에게 있다. 특보의 KBS 입성은 KBS 사장 자리가 정권의 전리품으로 공인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욕심이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해악을 선례로 남긴 것이다.
다음 정권에서 또 다른 특보가 낙하하더라도 무슨 명분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이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가 공영방송으로서의 KBS의 존립을 가늠할 가장 큰 과제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KBS의 정치적 독립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 이병순 사장 때와 김인규 사장 때를 비교한다면.

“KBS를 역주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양 시기에 걸쳐 현장에서의 자율성, 창의성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다. 특보 사장 체제하에선 오더성 기획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 최근 KBS보도에 대해 KBS안팎에서 MBC뿐만 아니라 SBS만도 못한 보도라는 자조와 정권홍보 비판이 거세다.

“MB 정권이나 KBS의 현 상층부가 공영방송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면 조지 오웰의 ‘이중화법(double-speak)’이 떠오른다. 말로는 공영방송을 외치지만 뜻은 국영 또는 어용방송이다.
예전에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청와대 수석일 때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KBS는 MB의 국정철학을 구현해야 한다고. 이런 사고방식이 현 KBS 상층부에도 스며들어 뉴스나 프로그램의 기조에 반영되는 것 같다. 지금 개별 방송사의 논조를 평면적으로 놓고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방송사들의 전반적인 논조가 기득권 위주로, 평화보다는 대결 위주로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 해체 전 탐사보도팀을 이끌었던 팀장으로서 최근 KBS의 탐사보도 기능 약화·실종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얼마전 B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파노라마’가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 관련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추문을 폭로한 적이 있다. 자국의 월드컵 유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인데도 거침이 없었다. 예전에 수에즈 운하 사태, 포클랜드 전쟁 때도 객관적 입장에서 자국 정부를 비판했다.
이라크 전쟁 전에도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만 모아서 한시간을 방송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파노라마’ 기자, PD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자국 정부가 전쟁을 결정하더라도 그 결정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이 BBC의 임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부러웠다. BBC가 공영방송의 대명사가 된 것은 이런 정신과 실천에서 비롯됐다.
이병순, 김인규 체제에 들어와서 KBS의 탐사보도 기능은 제거됐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권력을 감시하고, 검증하는 방송은 시도조차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KBS는 BBC를 배워야 한다고 떠드는 현정권 관계자와 KBS 상층부를 보면 제정신인가 싶다.”


 2008년 9월 인사보복 조치를 당하고 짐을 꾸리는 KBS탐사보도팀


- 여러 언론 운동 전문가들은 결국 KBS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건 구성원들의 노력뿐이라고 말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KBS가 나름대로 공영성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은 90년 4월 서기원 관제사장 저지 파업 투쟁이 큰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론 사회민주화에 그대로 편승한 측면이 크다. 한동안 어느 정도 주어진 정치적 독립성을 향유하면서 내부 구성원들이 이런 체제가 계속될 것이란 일종의 착각에 빠졌고, 공영시스템과 정치적 독립을 제도적으로 확고히 하기 위한 내부적 노력을 게을리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KBS는 가혹한 시련을 겪고 있지만 공영방송의 가치와 책임감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새노조 운동은 그 첫 걸음이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