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출간 이후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다시 오르기도 했다. 여성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해당 소설을 읽었다는 말을 하면서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 아이돌 그룹 멤버는 일부 남성 팬과 남성 중심 커뮤니티 이용자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모욕적인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음반을 부수고 사진을 태우는 장면을 찍어 커뮤니티에 게시하는 팬도 있었다.

 

배우 정유미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영화의 주연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때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배우 개인의 SNS와 관련 기사에 모욕적 댓글을 달고 있고, 아직 개봉되지 않은 영화에 평점을 낮게 매기는 이른바 평점 테러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들은 온라인상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배우 정유미. 사진출처:경향신문 DB

 

그러나 보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다. 이른바 검색어 기사라는, 사실상 취재한 내용이 없이 실시간 검색어에 맞춘 짜깁기 기사를 양산하는 관행이다. 포털 서비스 중심의 뉴스 소비가 보편화되면서 언론사들이 포털 검색을 통한 기사 노출 경쟁을 벌이는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경우에도 해당 배우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자 다수의 언론사가 무차별적으로 관련 기사를 생산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검색어 기사들은 댓글 증식을 통해 해당 연예인이나 공인의 고통을 늘리는 데 기여한다. 댓글이 많아야 트래픽이 늘어나기에 기사 내용이 댓글을 유도할 수 있는 자극적인 방식으로 작성되기도 한다. 흔히 논란이나 대결 구도를 선택하는 이유다. 이번 경우에도 배우의 SNS상에서 누리꾼들이 해당 작품의 영화화에 대해 논란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는 구도를 채택한다.

 

언론사들이 누리꾼 반응을 무분별하게 기사화하는 것 자체도 문제다. 이처럼 게으른 기사들이 버젓이 등장하는 것은 해외 언론의 경우 거의 없는 일이다. 해당 내용의 정보가치가 적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기사라고 하기 어렵다. 이번 기사들의 경우는, 특히 ‘논란’으로 틀짓기하고 누리꾼 반응을 전달했는데, 이런 보도방식은 사회적 ‘논란’에 관한 언론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공공 저널리즘의 문제의식은, 언론이 사회적 의제에 대해 시민들의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공론장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사선택하게 하는 특성 때문에 편향적 확신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고, 사회적으로도 극단적 일반화가 유행하거나 양극화 경향이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단순한 논란 전달이 아니라, 사회적 공론에 필요한 사실을 확인하고, 시민이 자신의 삶과 사회적 의제를 연결할 수 있는 기사를 제공하는 데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과 관련된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사들의 보도방식은 오히려 극단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데 기여한다. 관련 보도들은 정유미 배우의 캐스팅에 대해서 찬반 의견이 나뉘고 있다는 식으로 갈등에만 주목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반대의 이유이며, 또 그 반대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거나 혹은 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비난의 이유가 되는 기이한 현상의 의미를 따져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로 따지자면 오히려 우선일 것이다.

 

해당 소설은 지난 3월 기준 70만부 판매됐다고 알려져 있고, 대학 도서관 대출도서 목록 1위에 오르는 등 대중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었다고 말한 사회 명사 역시 많았다. 하지만 유독 공인이거나 잘 알려진 연예인 중 여성들만이 더 큰 비난에 시달린다. 언론은 이 소설과 관련 사안에 대해 보도하면서 이를 ‘페미니스트 논란’이라고 칭한다. ‘페미니스트 논란’이라는 표현 자체가 다소 기이하지만, 이런 제목과 틀짓기가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가 이 책을 읽었다고 했을 때, 또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쓰인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했을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페미니스트 논란’이라는 말은 페미니스트여서 논란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 현상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제목 달기이기도 하다.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논란으로 칭해버리면서 해당 주장의 의미를 축소하는 효과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마치 의견이 대립되는 중립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외양을 지닌, ‘논란’이라는 기사 아래에서 배우 본인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악성 댓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성적 모욕을 담은 댓글, 배우의 커리어나 인간성에 대해 폄하하는 댓글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논란’의 영역이 아니다. 응원 대 악플이라는 단순한 대결 구도로 보도해 클릭과 댓글을 유도하고, 유사한 사안이 생기면 다시 또 ‘논란’이라며 이를 반복하게 만드는 것은 저널리즘의 의무방기다. 순간의 화제성을 위해 오히려 ‘극단화’를 부추기고 이로 인해 여성 연예인이 고통을 경험하게 만드는 보도 태도에 대해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