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포스트>가 온다. 워싱턴포스트가 정부 기밀문서를 폭로했던 1971년도 사건을 다룬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과 연출을 맡았고,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리프가 각각 전설적 편집국장인 벤 브래들리와 발행인 케이 그레이엄을 연기했다. 개봉하자마자 골든글로브상 6개 부분에 후보로 올랐다.

 

영화가 흥행하고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맘이 편치 않은 언론이 있다. 뉴욕타임스다. 1971년 3월 제보자로부터 47권짜리 펜타곤 문서를 받았던 언론사는 뉴욕타임스였다. 몇 달에 걸쳐서 사실확인 작업을 수행해서 6월13일 단독보도를 터뜨린 것도 뉴욕타임스다. 그 때문에 닉슨 정부로부터 출판금지 명령을 받아 법정 투쟁에 나선 것도 뉴욕타임스였다. 그런데 웬 워싱턴포스트가 펜타곤 문서를 폭로하는 영화란 말인가.

 

‘1987’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워싱턴포스트가 펜타곤 문서를 파헤치기 시작한 것은 6월18일이다.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은 몇 달 전부터 뉴욕타임스가 뭔가 한 방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용이 뭔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특종을 터뜨리자 그 내용을 인용해서 쓸 수밖에 없었던 그는 ‘굴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뉴욕타임스가 출판금지 명령을 받자 문서를 건네받아 보도를 이어나갔다. 보스턴글로브 등 유력지들도 뒤를 따랐다. 미국 언론은 연대해서 투쟁했고 결국 법정에서 승리했다. 이 승리로 ‘뉴욕타임스 대 미국’이란 언론의 자유 역사상 기념비적인 판례를 만들어 냈다.

 

영화 <더 포스트>는 미국 언론의 승리를 기록하는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다. 특히 그레이엄 발행인이 책임 있는 언론사주로서 자리 잡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고 한다. 미국에는 역사적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의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 등의 소재로 삼는 전통이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재현한 <모두 대통령의 사람들>이나 보스턴글로브의 탐사보도를 추적한 <스포트라이트>가 대표적이다. 언론의 성공을 축하하는 것만큼이나 실패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이야기들도 많다. 

 

영화 <1987>이 흥행 중이다. 영화를 본 많은 시민들은 30년 전 고문치사 사건이 갖는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한국 언론에 대해 묻는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파헤친 한국 언론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가 나오기까지 29년간 우리 언론은 무엇을 했나?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민주주의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어떤 길을 걷는지 알기 어렵다. 주류 언론의 정파적인 논조, 불공정한 취재, 신뢰받지 못하는 내용을 보면 그렇다. 제작의 품질 수준은 높지만 내용의 충실성은 의심스러운 언론이 많다. 탐사 보도와 폭로가 가문 언론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다음 세 가지 가설이 유력하다.

 

첫째는 상업적 경쟁론이다. 1987년 언론기본법이 폐지된 후, 한국 언론은 급격하게 산업화하면서 상업적 경쟁에 나섰다. 1987년까지 26개에 불과했던 전국 일간지가 1990년대 말 100여개로 증가했고, 신문지면의 분량도 12면에서 48면으로 증가했다. 광고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석간신문들이 조간으로 전환했고 유통망을 확대했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메이저 신문사는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펼치며 다른 신문사와 격차를 벌렸다. 언론이 산업화하면서 광고주인 주요 기업의 이해관계를 따르고 수용자인 신중산층의 관심을 대변하다 보니 친기업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둘째, 이념적 분화론이 있다. 1990년 이른바 3당 합당으로 보수세력이 민자당으로 재편할 때, 반독재 운동 세력 중 일부는 보수진영에 참여했다. 영화 <1987>에 등장한 민주화 운동가였던 김정남이 대표적인 경우다. 민주화 세력 중 일부는 야당으로, 또 다른 일부는 재야 운동권으로 진출했다. 민주화 이후에 한국 사회가 복잡화하면서 시민 사회도 분화했다. 언론도 이와 같이 이념에 따라 분화하는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셋째, 언론이 권력 그 자체가 됐다는 가설도 있다. 1987년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굴종하던 언론은 민주화 이행 이후에 정권 창출에 기여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언론인은 당대 정권에 노골적으로 정치적 조언을 제공하다, 아예 정계로 진출하기도 한다. 예컨대, 1994년 12월24일 현재 김영삼 정부에 김용태 내무장관, 주돈식 문화체육장관, 김윤환 정무제1장관, 최병렬 서울시장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었다. 한국 언론의 권력화 현상은 최근까지 지속하는 일이다.

 

세 가지 가설은 각자 일정한 설명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설명을 모두 적용하더라도 미진한 부분이 있다. 기업화, 이념화, 권력화하는 주류 언론에 저항했던 언론인들이 남기 때문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본분을 지키는 기자와 연출자가 있다. 언론사에서 쫓겨난 이들도 있고, 제 발로 걸어 나와 독립적으로 언론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들이 써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 한국 언론은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이준웅 |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