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25일, 그리고 2018년 1월1일 이틀간, 교육방송(EBS)의 젠더 토크쇼 프로그램 <까칠남녀>는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성소수자 특집’을 방송했다. 지난달 25일 첫 방송 이전부터 해당 방송분에 대한 비난과 혐오 발화가 쏟아져 나왔고, 항의 시위가 계속되다가 지난 5일에는 교육방송의 건물 로비를 점거하여 시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계속된 시위 중 어린 학생 두 명이 피켓을 들고 나온 적이 있는데 각각 “EBS는 교육방송이에요 아니면 성인방송이에요?” “저는요 LGBT(동성애) 알고 싶지 않아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말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성인방송이 아닌 교육방송에서 방송된 이유가 그것이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이후 우리 교육과정에는 다양성의 가치와 타 집단에 대한 이해가 시민교육의 주요 목표로 제시되어 왔다.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연령, 지역, 계층, 종교에 따른 차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로 다양성의 가치다. 이는 유네스코의 세계시민교육 항목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일들이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점을 인지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 인류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인권 등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존중과 공감을 바탕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지역적·국가적·국제적 차원에서 신념과 정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중요한 항목으로 꼽는다. 시민교육의 범위에 다양성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공적 교육 과정에서는 이 부분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 이슈는 2014년 중·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에 대한 일부 기독교 보수 시민단체 등의 항의에 의해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못하는 등, 철저하게 교육 과정에서 배제되어 왔다. 성소수자 이슈를 알고 싶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 그것이 우리 공교육의 기본적인 입장이자 실패 지점이었던 것이다. 교육방송은 정확히 이 지점의 문제를 다뤘다.

 

교육방송의 역할은 이와 같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에 문제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 이제까지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발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시민들에게 대안적 시선을 소개하는 것을 포함한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성차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고, 공적 영역에서 부인당해 온 성소수자에게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시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까칠남녀>는 교육방송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물론 해당 프로그램이나 해당 방영회차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육방송이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제 설정 역할을 했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를 비난하면서 항의 시위를 계속하는, 특정 정체성을 공유하는 단체들은 매번 동일한 전략을 고수한다.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슈나 페미니즘 문제를 모두 선정적인 것이라 주장하고 음란방송, 성인방송이라고 프레이밍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 주장의 근거가 잘못되었다는 과학적 설명에도, 무엇이 음란한 것이냐는 정의의 문제를 두고 다투자는 것에도 응답하지 않는다. 교육방송이 성인방송이냐는 위의 질문은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 모두를 ‘음란’ 프레임에 가두어 온 전략의 연장선상이다. 퀴어문화축제 때마다 반대 이유로 꼽혀온 것은 “퀴어는 음란하다”는 주장이었다. 근거가 아니라 주장 말이다.

 

이러한 주장을 반복하면서 항의 시위를 하는 세력은 특정 존재의 가시화를 막으려는 시도를 신앙의 이름아래 정당화하면서, 사회의 보수적 인식을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선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선정적이란 말은 성적 욕망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과장되거나 허위의 사실로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 역시 포함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이 항의 시위와 게시판 글쓰기에서 해당 프로그램 참여자들을 비난하고 모욕하기 위해 사용한, 공적 담론의 장에서 차마 재인용할 수 없는, 언어와 표현이 선정적인 것이지, 해당 방송 프로그램이 꾸준히 제시했던 현존하는 성차별의 문제들이나 ‘5년 동안 (여성이) 여성과 함께 살았다’는 말이 선정적인 것은 아니다.

 

해당 프로그램은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명을 패러디한 ‘모르는 형님’이라는 제목으로,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고 있고 그래서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제시했다. 미국의 철학자 누스바움은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시민성의 요소로 여러 가지를 제시한다. 이 중에는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소수자 집단에 대해 이들을 세상을 망치는, 오염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상투적 사고나 혐오감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타인의 관점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상투적 사고, 특히 특정 신념에 근거한 혐오감 때문에 이전에는 알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시민으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해당 방송을 봐야 하는 이유이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