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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어머니! 날씨가 선선해져서 좀 괜찮지요?” “으응…. 회사 나가냐?”

“에, 예~?” “깻잎 좀 쟁이고, 열무김치 좀 허는디…?” “아, 어머니 쪼금만 하세요” “으응 글란다” “….(건성이시다. 조금일 리 없다)” “전에 가져간 건 다 먹었냐? 난 통 입맛이 쓰드만. 뭔 맛인지도 모르겄고?” “아, 에, 예~. 다 먹었어요(거짓말이다)” “어디로 가냐?” “이제 상암동요. 제가 가지러 갈게요”. (100m 걷는데 전화가 다시 울리고) “예?” “요새 MBC, KBS 사장 몰아낸다고 난리던디 너는 절대 앞장서지 마라잉!” “아 예~.” “넌 위원장까지 했는디…저 불식헌 놈들이 눈구녁을 어디로 돌릴 줄 몰릉게, 긍께 나서지 말고 뒤에 빠져서 가만히 있다 따라가기만 해라 잉.” “예~으헤헤~.” 1987년 어디쯤이 아니라 2017년 어느 모자의 대화다.

 

3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정우택 원내대표의 발언을 MBC방송 카메라기자가 취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김장겸 MBC 사장이 부당노동행위 의혹 조사를 위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혐의로 특별사법경찰인 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체포영장이 법원으로부터 발부되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영장청구를 결정할 수 있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MBC·KBS를 노영(勞營)방송으로 만들어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 당은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다”며 정기국회 보이콧을 결정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그래도 공영방송 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이 과하지 않나 하는 주장과 의견도 등장했다.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두 방송의 파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앞서의 전화에 등장하는 그는 몇년 전 어느 대학원에서 수사학을 강의할 때 학생으로 만났다. MBC PD였고 노조위원장이었던 그는 조용했고 차분했다. 그는 방송사가 있던 여의도에서 학교로 오지 못했다. 어느 날에는 근무지를 벗어날 수 없어 수업에 나가지 못해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고양시 어디로 파견을 나갔다고 했고 내키지 않아 하며 잠시 무슨 일을 하는지 간단히 설명을 했지만 슬퍼보였다는 인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을 나는 일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덩그러니 사람만 홀로 놓인 빈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심한 선생이었던 나는 얼마전 페북을 보고 알았다. 해고자 신분으로 뉴스타파에서 일하던 2012년 겨울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이른바 호봉과 근속도 날려버린 특별채용으로 MBC로 돌아왔을 때였다는 것을. 그는 지금 여전히 자신의 전문 영역 바깥을 돌고 있고 ‘구로 유배지’에 있다고 했다.

 

그해 기말시험으로 나는 자신 인생의 10장면을 선정해 개인의 서사와 미래를 정리해 보는 내러티브 작성 과제를 주었다. 한 줄을 써도 좋고 한 장을 써도 좋다고 한 과제에 그는 10여장 빽빽이 인생의 긴 여정을 담담하고 분명하게 담아 보내왔다. 노여움과 분노보다 성찰과 기대가 깃들어 있어 놀랐다. 잘못된 것을 멈추고 유지해야 할 것을 지키고 새로 시작해야 할 행동을 정하는 과제에서 그는 삶의 새로운 희망 몇 가지를 제시했고 그중에 ‘요리’가 있었다. 의외여서였을까 리포트를 다시 찾지 않아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해 겨울 그는 언젠가 자신의 직무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을 다짐하는 동시에 새로운 삶을 그리고 있었다. 한 사람의 자존과 평범한 삶을 지키기 위해 그는 그렇게 애써 표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현재와 싸우고 있었지만 미래를 구상하고 있었다.

 

며칠 전 그가 파업 투쟁에 나선 MBC 조합원들에게 오랜만에 발언을 한 모양이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며 나는 여기서 멈추고 말았다. “감정이 강퍅해져서 큰일입니다. 원래 예민하기도 하고 감정과잉도 있어서 늘 애쓰기는 합니다. 예전에는 눈물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수 년 새 많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눈물이 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의 투쟁사를 다 읽었다. 그는 잘못된 과거와 싸우고 있었다.

 

KBS 파업에 참여하는 후배는 라디오 프로그램 앵커를 물러나던 날 공영방송 기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청취자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염치없는 이들을 대신한 사과였다. 라디오는 예전 방식으로 유효하면서도 새로운 연결성을 가진 매체라 언제나 흥미로운데, 경제를 다루는 시사교양이지만 다양한 포맷을 시도하며 강한 청취자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어 주목하고 있던 차였다. 그와 동료들의 실험은 멈췄다. 잘못된 과거가 현재를 붙잡는 것 같지만 미래를 준비하던 길도 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김장겸 사장과 그들의 혐의는 과연 무엇일까. 언론에 회자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특종 기자 미래 없고 착한 기자 오래간다.” 그렇다. 그들의 죄는 정확하고 바르게 쓰려는 기자들의 헌신을 억압한 혐의다. 그러나 더 무서운 죄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고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진화해야 하는 언론인들을 과거에 머물게 한 죄다. 중죄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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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