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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칼럼]신문의 살길은 저널리즘에 있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신문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매체의 위기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최근 위기론은 그 차원을 달리한다.

기존의 위기는 서로 다른 성격의 매체와 경쟁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유사한 매체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형식상으로만 보면 인터넷에서 보는 기사와 종이신문 기사에서 그리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신문의 탈출구를 역으로 인터넷 기사 유료화 또는 새로운 매체에 적합한 기사 콘텐츠의 생산 등에서 찾는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위기의 본질에 맞는 대책일까?




세계적으로 많은 언론들이 유료화를 시도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음에도 뉴욕타임스 같은 일부 신문은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내용 경쟁력이다. 다른 신문, 다른 인터넷 매체가 제공하기 어려운 기사를 생산하는 매체력이 바로 유료화의 원동력이다. 형식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문제인 것이다.


공짜로 검색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가 인터넷상에 흘러 다니고 있는데 기사의 형식을 새로운 매체 즉 모바일 형식에 맞게 고친다고 경쟁력을 가질 수는 없다.

스마트폰 또는 다양한 모바일 기기에 맞는 기사를 생산하고 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앱을 개발해도 저절로 유료 소비가 가능한 정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상품의 질적 변화 없이 공짜에 익숙한 소비자가 유료에 동의하는 충성 수용자가 될 수는 없다.


오래전 포털에 신문기사를 헐값으로 넘기는 실수를 저질렀던 신문들로서는 개별 앱을 통해 신문을 직접 구독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의 발전은 새로운 기회임이 분명하다. 유료화나 독자적인 광고 수익 창출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의 존재가 우선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 매체 신뢰도의 확보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권력화된 신문들이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기사를 남발함으로써 신문의 존재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신문 기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신문 존재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현실까지 초래하였다. 그들의 매체력을 고려하면 그 영향이 그들 신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또 일부 지배적인 신문들이 상품의 질적 경쟁을 포기하고 경품, 무료 구독 제공 등 불공정 경쟁을 통해 신문 존재 이유를 변질시켜 놓은 현실은 비참하다.

주부들이 전단지가 제공하는 정보의 유용성 때문에 신문을 끊지 못한다는 농담은 민주주의를 위한 여론 매체로서 신문의 본질적인 기능이 이미 작동하지 않고 있는 뼈아픈 현실을 풍자한다.


그렇다고 다른 신문들이 선의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비록 일부 지배적인 언론들이 선도했지만 1990년대 무한경쟁 속에서 대부분의 신문들이 선택한 신문 연성화 전략은 다른 매체와 신문의 매체 차별성을 소멸시켰다.

이제 우리가 종이신문과 일반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적 차이가 별로 없다는 평가가 그리 과도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이것들을 극복하지 않고 신문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시장주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력이 없는 상품의 소멸에 불과하지만,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여론매체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신문은 분명히 다른 매체와 달리 심층적이고, 종합적인 여론 전달매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신문의 소멸은 사회적 손실이다.


신문의 위기 극복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가 사회적 지원에 관해 고민하고 대책을 내놓고 있다. 바람직하지만 대책은 위기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문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신문의 본질인 저널리즘을 살리는 대책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문의 자구책 역시 경쟁력을 위해서도 저널리즘 강화가 우선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도 살아남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