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BS 인기 프로그램 <보니하니>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 중 진행자인 성인 남성 개그맨이 하니 역할을 맡은 미성년자 여성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가해서 문제가 되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는 인기 명절 예능 프로그램인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 촬영 중 스태프가 여성 아이돌 멤버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장면이 포착되어 비판을 받았다.


이 사례들은 우리 사회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 전환 및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해외 국가들처럼 아동청소년 출연자에 대한 명확한 보호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영국 BBC의 경우 제작가이드라인에서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육체적, 정신적 복지와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방송 제작 관련 규범은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품성과 정서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기술되어 있다. 우리 사회 내 존재하는 연령에 따른 위계구조는 아동청소년을 보호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동등한 존중의 대상으로 사고하는 것을 가로막는 측면이 있다. 근본적으로 아동청소년이 동등한 인격으로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지난 10일 유튜브로 생중계된 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의 한 장면. 성인 남성 출연자가 청소년 여성 출연자를 때리는 듯한 장면이 포착돼 논란이 일었다. 유튜브 캡처


존중에 대한 명확한 인식 부재는 타인을 향한 폭력적 표현들에 대해 둔감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대 들어서야 드라마에서 이성애 로맨스의 낭만성을 극화하는 장치로 자주 등장하는 손목 잡기, 벽에 밀치는 행위 등이 폭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런 행위에 대해 굳이 폭력이라는 과도한 표현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폭력을 단지 육체 상해의 문제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보니하니> 사례에서도 초기에는 ‘위협적 행동이 아니라 친밀감의 표현이다’, ‘모욕적 표현이 아니라 친해서 한 말이다’, ‘폭력 행위는 없었다’ 등의 해명이 나왔다. 해당 행위를 한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을 수는 있지만 사실 폭력은 맥락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며 여러 요인이 결부되면서 표출된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성인 남성과 미성년 여성 출연자 간의 관계는 연령, 젠더 등으로 인한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위계질서 속에서 친밀감이란 약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형태의 것이지 동등한 인격 간의 관계적 감정이 아닐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오랜 기간 폭력 행위를 가볍게 취급하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신체적 힘을 가졌는가를 유머 코드의 일부로 구성해왔다는 점도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타인의 몸에 허락 없이 손을 대는 것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는 문화적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에 묘사된 폭력이 바로 폭력적 행위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머와 동반되는 폭력, 가볍게 묘사되고 친밀감 표현으로 정당화되는 행위들이 사회적으로 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둔화시키고, 폭력을 사소하게 여기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다수의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무엇을 폭력으로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사소하게 여겨지는 폭력 행위들이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어서이다. <아육대>의 방송 스태프는 여성 아이돌 멤버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고 말한다. 타인을 멈추게 하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동원하는 방식이 타인의 신체에 거칠게 접촉하는 것만으로 상상되는 것은 타인과 나의 경계,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 간의 거리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결과이다. 사회적 인식 부족에 기반한 관행들이 텔레비전, 유튜브 등 다수가 시청하는 미디어 재현물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다시 이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  


EBS 측은 재발 방지를 위해 제작가이드라인을 정비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존중, 일상생활에서의 위계적 관계나 사소하게 여겨지는 폭력 개념에 대한 인식 변화의 실천적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 출연자 보호를 위한 모범적인 제작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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