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록은 저항이다? 그런 말 관심없어요 개인 생각 투영되는 노래는 이미 정치적”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보컬 장기하(27)는 홍대 앞 인디신이 실로 오랜만에 배출한 ‘전국구’ 스타다. 그의 공연 동영상을 부지런히 돌려보고, 그의 노래를 패러디해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를 만들던 네티즌들의 열기는 가히 신드롬에 가까운 것이었다.
장기하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지난해 9월 EBS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 ‘헬로루키’로 지상파 방송에 데뷔하면서부터다. 이후 그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군의 추종 세력을 형성했고, 급기야 ‘장 교주’ ‘인디계의 서태지’로 숭앙받기에 이르렀다. 듣는 사람을 고민하게 만드는 의미심장한 가사, 귀에 척 달라붙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인기의 비결이다. 덕분에 지난해 5월 발표했던 싱글 음반 <싸구려 커피>는 인디 음반으로는 드물게 판매량 1만장을 돌파했다.
장기하는 오는 27일 ‘장기하와 얼굴들’(보컬 장기하, 베이스 정중엽, 기타 이민기, 드럼 김현호, 코러스·안무 미미시스터즈)의 첫번째 정규 음반을 발표한다. 음반 준비와 공연 연습이 한창인 그를 지난 11일 서울 홍대 앞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표정은 인생을 달관한 듯 무심했지만 질문에 답하는 태도는 진중했다. 어찌나 점잖던지, 그가 카페 종업원에게 ‘오레오 쉐이크’를 주문하지 않았더라면 20대라는 그의 나이를 의심했을 것이다.
-2월27일 ‘장기하와 얼굴들’의 첫 정규 음반이 발매됩니다. 소개를 간단히 한다면.
“싱글 음반으로 발표했던 노래 ‘싸구려 커피’를 포함해서 제가 작사·작곡한 13곡이 들어가요. 앨범을 발표하는 당일 오후 8시에 처음으로 ‘장기하와 얼굴들’ 단독 공연도 합니다.”
-지난해 5월 발표한 싱글 음반 <싸구려 커피>는 직접 공CD에 음악 파일을 굽고 레이블을 붙여서 만든 ‘수공업 소형 음반’이었습니다. 이번 정규 음반도 수작업으로 만드는 건가요.
“아니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CD 형태가 될 겁니다.”
-싱글 음반 <싸구려 커피>가 연초 1만장을 돌파했습니다. 많이 팔렸으니까 수익도 발생했겠네요.
“수익은 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도 말하기가 애매한 게, 수공업 소형음반이란 게 회사 사람들과 뮤지션들의 인건비는 거의 계산을 안 하는 거라서요. 만약에 인건비를 이론적으로라도 산출한다고 하면 수익이 난다고 보긴 어렵겠죠. 사무실 사람들이 자기 생계는 알아서 따로 해결을 하고 있거든요.”
-사무실 사람들이 알아서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면 밴드 멤버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지는 겁니까.
“일단 저는 부모님 댁에 얹혀 살고 있어요. 아, 용돈은 끊었어요. 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용돈을 받았는데 이제는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은 수입이 생기고 있어요.”
-현재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음악인으로서 제대로 평가받는 건 정규 음반이 나온 이후가 될 텐데요. 어떤 평론이 나올지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평가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평론이나 이런 것들이 저한테 아주 주된 관심사는 아닌 것 같아요. 싱글 음반으로 발표한 3곡을 포함, 이번에 들어갈 모든 곡들이 저는 좋거든요. 그것을 최대한 잘 표현하기 위해서 지금 녹음과 믹싱에 매달리고 있는 건데, 글쎄요. 좋은 것을 내면 좋은 거겠죠.”
-밴드의 시작에 대해서 얘기해볼까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어렸을 때 피아노를 <체르니 100>의 첫 장까지 배우고 그만뒀던 적은 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거예요. 그때는 부모님이 시켜주셨는데도 하기가 싫었어요. 평생 유일하게 후회되는 게 그때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겁니다. 제대로 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 집에 통기타가 생겼는데 그걸 연습하면서 이렇게 됐어요.”
-그럼 인디 밴드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인디 밴드로서 클럽에서 공연하기 시작한 건 2002년부터예요. 그때는 ‘눈뜨고 코베인’이란 밴드에서 드러머로 시작했고요. 그 전에는 스쿨 밴드라든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자작곡으로 밴드했던 게 있었죠.”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으로 지은 겁니까.
“사실 별 뜻 없어요.”
-대중들에게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엔 ‘얼굴이 잘 생긴 사람들을 모아서 밴드를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던 것 같은데.
“그거야 뭐, 처음에 그 말을 했을 때부터 농담인 줄 다 알고 계셨잖아요. 같은 농담도 여러 번 하니까 저도 이제 지겹고.(웃음) (외모에) 자신은 있습니다. 제가 아이돌 같이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크게 보기 흉한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고.”
-싱글 음반 수록곡 ‘싸구려 커피’는 ‘자취방에서 뒹구는 룸펜의 일상을 날카롭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관심을 끌었습니다.
“자취생을 표현하려고 한 노래는 아니었어요. 그냥 제가 느낀 것을 적절한 어휘로 표현한 겁니다. 저는 자취를 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자취방이란 공간, 자취생이란 사람들과 아예 관계가 없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닌 게 제가 누군가의 자취방에서 보낸 시간이 많으니까요. 거기에 빚을 진 게 있다고 생각을 하고. 기본적으로 노래를 만들 때 자취생이냐 아니냐, 곤궁하냐 아니냐가 초점은 아니었어요. 그냥 기분 안 좋을 때 (가사를) 쓴 거예요. 안 좋은 기분으로.”
-‘싸구려 커피’의 가사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공포심을 겨냥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정말 그런 뜻으로 작사를 했습니까.
-노래 가사도 가사지만, 무대 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춤추는 ‘미미 시스터즈’도 ‘장기하와 얼굴들’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밴드를 만들던 초기부터 전체적인 무대 연출에 대해 구상한 바가 있었습니까.
“구체적인 그림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고, 제가 하기에도 재미있고 보기에도 재미있는 형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죠. 처음엔 저까지 4명만 있었어요. 공연하기 한 2주 전에 ‘나를 받아주오’라는 새 노래를 만들었는데 노래를 만들고 보니까 여성 코러스가 꼭 필요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수소문을 해서 도와주실 분을 2명(미미 시스터즈) 찾았어요. 노래에 맞게 율동도 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첫 공연을 6명이 함께 한 겁니다.”
-‘미미 시스터즈’는 인터뷰나 무대에서 말을 일절 하지 않는데, 왜 말을 못하게 하는 건가요.
“제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시나보죠?(웃음) 무대에 올라간 사람들이 다 말을 할 필요가 있나요. 저처럼 인터뷰 다니면서 신상을 시시콜콜하게 다 말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할 사람은 하고 몇 명만 그러면 되죠, 뭐.”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가 1970~80년대 포크록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장기하씨가 ‘산울림’, ‘송골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취향이 ‘올드하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올드하죠. 요즘 노래보다는 옛날 노래에서 더 좋은 느낌을 받아요. 요즘 노래들은 물론 좋은 노래들도 있지만 시대를 통해서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노래들이잖아요. 제가 태어나기 전 음악인데 제가 듣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좋은 것일 가능성이 높죠.”
-다른 인디 밴드들도 있는데 왜 유독 ‘장기하와 얼굴들’이 많은 인기를 누린다고 생각합니까.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제 음악이 되게 좋거든요. 저랑 어느 정도 공감하시는 분들은 분명히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으셨던 것 같아요.”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주목 받은 것은 아닐까요.
“맞는 얘기죠. 누구나 서울대면 더 주목을 받아요. 연기를 하시는 분들이건 음악 하시는 분들이건 간에, 그런 건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인터넷에 ‘장기하’를 검색해보면 연관 검색어로 ‘장기하 서울대’가 항상 뜨거든요. 검색 한번이라도 더 한다는 얘기니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를 나와서 뭘 하든지 간에 손해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언론 관련법의 국회 상정에 반대하는 MBC 파업 현장에 찾아가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부에선 이 일에 대해 ‘장기하와 얼굴들은 개념 밴드’라고 칭찬하기도 했지만,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일인 만큼 선뜻 나서기가 부담스러웠을 것 같은데요.
“사실 그런 사안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제가 책도 잘 안 보지만 뉴스나 신문도 잘 보는 편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방송국에 라디오 출연하느라 왔다갔다하다 보니까 여러 루트로 요청이 왔어요. 처음에는 ‘안 하면 안 될까요’ 얘기했어요. 제가 음악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동조한다는 게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몇번 더 말씀을 하시기에 제가 열심히 알아봤어요. 기사를 검색해보고. 그러다보니 좋은 방향인 것 같은데 굳이 뭐 몸 사릴 것 있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굳이 안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음악 평론가 중 일부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지금처럼 일상적인 소재를 노래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노래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미 정치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모든 노래가 정치적인 입장이 있죠. 그런 분들은 그것을 노골적인 어휘로 하느냐 안 하느냐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이 투영된다는 것도 하나의 정치색이죠. 그리고 저는 ‘록은 저항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말 자체에 관심이 없어요. 그런 말씀을 왜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음악을 전업으로 할 계획이 있습니까.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하고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전업으로 음악하는 게 제일 좋죠.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음악을 하면서까지 전업으로 할 생각은 없어요. 하고 싶은 것을 안 하면 음악 하는 의미가 없어요.”
-이름이 알려진 이후에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다든가, 혹은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늘었는지 궁금합니다.
“공연을 더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관심 갖는 분들이 늘어난다는 건 공연에 더 많은 분들이 올 가능성이 있단 얘기고, 그러면 투자하는 입장에서도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공연을 재미있게 꾸미는 데 좀더 유리해지는 거잖아요. 연주만 하는 공연이 아니라 극적인 형태를 가미한다든지 조명에 신경을 쓴다든지 그런 걸 많이 해보고 싶고. 나중엔 뮤지컬 작곡도 해보고 싶어요.
-원래 뮤지컬을 좋아했습니까.
“좋아하죠. 뮤지컬을 많이 보는 건 아니지만. 제 생각에 영어 작품 중에는 영어 가사가 잘 전달되는 뮤지컬이 많은데 우리나라 뮤지컬 중에는 (우리말 가사가 잘 전달되는 작품이) 많지 않더라고요. 제 방식대로 가사를 쓴 뮤지컬을 제가 한번 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아니고 나중에.”
-정규 음반을 내고 나면 공연을 많이 하게 될 텐데. 방송 활동 계획도 있습니까.
“EBS <스페이스 공감>에 나가기로 했고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공연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저희 음악에 대해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기회만 주신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죠.”
-정규 음반과 단독 공연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하니까 바쁘겠습니다.
“물리적으로 바쁘긴 되게 바빠요. 녹음을 해주는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앨범 프로듀서가 따로 없어서 제가 프로듀싱을 다 하거든요. 또 단독 공연은 처음이기 때문에 연출을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지만 결국 제가 다 연출을 해야 해요. 그것만으로도 바쁜데 간간이 라디오 방송도 하고 공연도 아예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일당백의 ‘종합예술인’이네요.
“인디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종합예술인이 아닌 사람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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