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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의제의 패자부활전’ 모바일 저널리즘으로 활짝


지난 1일 낮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아파트 화재사건 때 포털 뉴스에 오른 화재 현장 1보 사진은 시민이 찍어 트위터에 올린 것이었다. 지난달 서울 일대의 ‘물난리’ 때도 트위터를 중심으로 생생한 현장 소식이 전달됐다. 2008년 촛불집회 때 활약했던 인터넷 생방송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옛날 이야기가 됐다.


창의적이고 기동성으로 다시 무장한 시민저널리즘이 주목받고 있다. 시민저널리즘은 1990년대 시민사회단체의 언론운동에서 시작해 2000년 전후 시민저널리즘을 표방한 ‘오마이뉴스’ 등 매체의 발전, 시사블로그를 거쳐 스마트폰과 1인 미디어 블로그, 트위터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뉴미디어 기술 발달에 힘입어 만개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시민저널리즘을 ‘모바일 저널리즘’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민저널리즘은 화재·수해 같은 사건·사고의 단순 전달에 그치지 않고, 저널리즘의 핵심인 ‘의제 생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청문회 여론을 주도한 것도 소셜네트워크를 무대로 한 시민저널리즘이었다. 블로그의 심층 분석과 트위터의 발빠른 정보 전달이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시민저널리즘의 특징은 기성 언론이 외면하거나 기피하는 의제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5월24일 방송 매체들은 천안함 관련 뉴스로 도배했다. 이에 비해 투표를 독려하며 지방선거를 정권에 대한 심판의 장으로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은 시민저널리즘이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두리반 건물 철거같은 문제의 이슈화도 시민저널리즘이 주도했다. 이처럼 시민저널리즘은 정치·경제 권력, 특히 한국 기성 언론의 최대 약점인 기업 광고에 예속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의제 설정과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게 강점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의제의 패자부활전’으로 시민저널리즘을 설명한다. 김 교수는 “시민저널리즘, 1인 미디어의 중요한 기능은 ‘의제의 패자부활전’”이라며 “온·오프라인의 진보 매체들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묻힐 뻔한 의제들을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 부활시키고, 새삼 그 의제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공론장에 제출한다”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시민저널리즘의 확대는 매체 기술 변화 과정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라며 “매체가 독점적이지 않고 쌍방향으로 변하면서 개인들이 일방적·피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여론 생산자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의제 설정은 정보력의 규정을 받기 때문에 의제 설정 기능은 아직도 제도권 언론이 쥐고 있다”면서도 “팩트 싸움에서 제도권 언론에 밀리는 시민이 여론 시장에서 제도권 언론의 의제를 어떻게 사멸시키고, 증폭시키는지 작동원리를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BS <8시 뉴스>를 진행하는 신동욱 앵커의 ‘양배추 김치 옹호 발언’에 대해 기성 언론들은 단순 사실 보도에 그쳤다. 하지만 시민들은 트위터와 뉴스 댓글로 비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신 앵커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시민저널리즘 발전의 내용 면에서 동영상 저널리즘의 등장도 주목할 만한다. 개그맨 김제동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 때 투표를 독려한 동영상(오마이뉴스 제작)은 조회수 30만건이었다. 최근 풍자로 주목받는 ‘대한민국자식연합’이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사건을 다룬 패러디 ‘굿파아더’는 조회수가 60만건을 넘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을 일으킨 발단도 ‘쥐코’라는 이름의 동영상이었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앞으로 곧 동영상 중심의 시민참여형 저널리즘이 꽃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저널리즘의 한계도 곧잘 지적된다. 김호기 교수는 “오프라인 매체는 사실 확인을 중시하는데, 시민저널리즘은 조직이 없거나 사람 수가 부족해 사실성의 담보가 기존 매체보다 취약한 게 약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의 중요 의제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는 오프라인이 잘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소셜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시민저널리즘의 한계로 경제력 격차를 거론했다. 신 교수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아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지만, 아직도 다수는 경제력, 정보기술(IT) 격차, 세대차 문제 때문에 능동적으로 시민저널리즘에 참여하기 어렵다”며 “혜택을 못받는 계층·세대가 있다면 보편성이란 시민저널리즘의 본질적 뜻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포털의 강력한 정보 유통력이 시민저널리즘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서중 교수는 “인터넷의 막강한 잠재력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포털 형식으로 뉴스 영역을 장악한 강자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수용자는 기존 언론보다 더 가볍고, 더 선정적인 포털 중심 매체에 좌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온·오프라인 언론 매체와 시민저널리즘의 발전 방향과 관련해 학자들은 온·오프라인 매체 간 연대를 강조한다. 김호기 교수는 “1인 미디어는 특정 이슈에 대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며 “의제 설정과 이슈 파이팅 사이에서 생산적인 역할 분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서중 교수는 “온·오프라인의 작은 언론들이 각개약진하는 게 아니라 공통의 노동을 공유하고 좀 더 전문적인 기사 생산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목기자 jomo@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