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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김종목의 미디어잡설

‘현병철 인권위’ 인권 부재의 나날

*이 글은 <주간경향>에 연재중인 [정동늬우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는 날마다 홍수처럼 쏟아집니다. 자칫 눈앞의 사건들에만 주목하고 넘어가기 쉬운 요즘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건에는 맥락이 있습니다. 지난 뉴스를 다시 살펴보면 그 흐름이 보입니다. 경향신문 김종목 기자가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의 흐름을 한 가지 주제로 엮어 매주 뉴스의 맥락을 짚어드립니다. <편집자 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 강윤중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6개월간 검토한 끝에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중략) 최경숙 전 상임위원은 “정권에 불편한 안건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논의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2010년 12월 27일자, 인권위, ‘민간인 불법사찰’ 각하)

청와대 개입설이 나온 민간인 불법사찰. 검찰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 성역. ‘좀비기구’라고 비아냥 듣는 인권위가 조사할 리 없다. 불편한 안건? ‘현병철 인권위’ 안건에 오를 요건이 못된다. 인권 부재의 나날은 2009년 7월로 거슬러올라간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 내정자는 이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없으며 특정인의 추천이 아니라 인재 데이터베이스에서 적임자로 선별된 인물”이라고 말했다.(2009년 7월 17일자, 현병철 자격 논란)

그런데 현 내정자, 인권과도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부적합 인물이라는 인권·시민단체들의 반발은 당연. 그리고 논문 중복게재. 이 정권 들어 빠지면 섭섭한 이력. 청와대, 4대강도 밀어붙이는데, 없으면 좋을 기관의 ‘장’ 하나쯤 밀어붙이는 건 일도 아니다. 그렇게 오른 자리.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인권위원장도 마찬가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도 “경찰과 사측은 노조원에게 의약품과 음식물이 공급될 수 있도록 조치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긴급성명을 냈다. (2009년 7월 25일자, “쌍용차 사태 평화적 해결” 사회원로 등 600여명 시국선언)

직권조사나 긴급구제조치가 아니라 그저 성명이면 어때. 이때만 해도 인권을 하나둘씩 배워가는가보다 했다. 앞서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도 그런 기대였을까. 7월 16일 내정 발표 때 한 말.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인권위 현안을 해결하고 조직을 안정시켜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정 배경을 밝혔다.

대통령 발언 마사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엉터리 기대까지. 그런데 ‘김은혜의 저주’일까. 인권 후진국 소리가 나온다.

아시아 인권위가 “한국 인권위의 등급을 낮춰달라”고 ICC에 요청했다고 한다. 정부가 인권위 독립성을 훼손하고 위원장에 인권과 무관한 인사를 임명하는 등 국가인권기구에 관한 국제적 원칙을 위배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2009년 8월 4일자, ‘인권위의 망신은 이 대통령의 망신이다’)

국제사회는 현 위원장의 ‘인권 학습 능력’을 의심한 듯. 예컨대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 현 위원장과 수구보수세력이 만들어낸 3단 논법을 보자.

현 위원장은 (지난 4일) “보안법 폐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중략)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인권위원장이 보안법 폐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사상적 문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공격했다. (중략) 현 위원장은 지난 1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안법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고 말을 바꿨다.(2009년 8월 16일, ‘진보·보수 협공받는 현병철’)

군 면제자들이 지하벙커를 장악했듯, ‘인권 문외한’들이 무교동(인권위 주소지)을 접수한다. 이 대통령이 상임위원에 임명한 김영혜 변호사. ‘현병철 인권위’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김 내정자는 고려대 법대 출신으로 (중략) 보수성향 변호사단체인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중략) ‘시변’은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전교조 명단 공개와 관련된 소송을 수행했다.(2010년 11월 11일, MB ‘인권위 마이웨이’)

한나라당도 11월 18일 공석 중인 여당 몫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뉴라이트 진영의 대표적 이론가인 홍진표 사단법인 시대정신 이사를 추천. 현 위원장은 이들이 오기 전부터 ‘국가인권위원장’이 아니라 반북·냉전의 ‘국가정체성위원장’의 사명을 갖고 일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 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2006년 ‘북한 지역의 인권침해 행위는 조사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바 있어 ‘원칙을 벗어난 현 정권 코드 맞추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2010년 1월 21일자, 인권위 ‘정권 코드 맞추기’)

게다가 ‘깜둥이’ 발언까지.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을까.

문화방송의 <시사매거진 2580> 보도에 따르면 현 위원장은 지난 7월 인턴으로 온 사법연수생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다 흑인을 지칭해 ‘깜둥이’라는 표현을 썼다고도 한다. (2010년 11월 9일,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만이 해법이다’)

인권 마인드를 갖춘 사람들이 견디기는 힘들었을 터.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 등은 “(현병철 인권위는) 후진국 인권기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비판하며 사퇴. 시민단체는 농성 돌입. 야 5당 등은 ‘현 위원장 사퇴촉구 대책회의’ 결성. 현 위원장, 불굴의 의지와 임전무퇴 정신에 그새 인권 업무까지 다 배운 모양. ‘선진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그 분의 아바타가 아닐까. 이 아바타의 고향은?

현 위원장은 “인권위는 가장 잘 운영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e메일을 보내 격려하는 사람도 많다”고 응수했다. 이에 민주당 김유정 의원은 “위원장은 안드로메다에서 왔느냐”고 몰아붙였다.(2010년 11월 10일, 야권 “위원장 사퇴”, 현병철 “가장 잘 운영”)

인권위 전문위원 등 57명이 집단사퇴. 아시아 인권위는 “한국의 인권위 사태와 관련,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해도 흔들림 없는 이 분은 ‘인권위의 안상수’인가보다.

“오로지 인권이라는 기준을 토대로 흔들림 없이 업무를 추진하겠습니다.”(2010년 11월 17일, 현병철 “흔들림없이 업무 추진”)

흔들림 없이 추진한 업무는 다음과 같다.
인권위가 보수성향 위원들이 늘어나자 북한 인권 관련 권고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야간 옥외집회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표명 안은 부결됐다.(2010년 12월 7일자, 인권위 ‘북한 인권권고안’ 세번 만에 통과)

영복여고 3년 김은총양. 인권위 주최 인권에세이 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자로 선정. 그러나 수상 거부. 김양이 쓴 ‘현병철의 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는 제목의 글. 김양을 인권위원장으로.

김양은 “현 위원장은 고등학생이 느낄 만한 인권 감수성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며 “여러 위원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데도 그 목소리에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꽉 막힌 학교, 꽉 막힌 사회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 8일자, ‘현병철 인권위서 주는 상 거부’)


<김종목 경향신문 미디어부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