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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공감]헷갈리는 KBS

3인조 여성그룹 오렌지캬라멜은 정말 ‘깬다’. 걸그룹의 공식인 예쁜 척, 귀여운 척, 섹시한 척, 센 척을 버린, 파격적인 팀이다. 황당하고 코믹하다. 얼마전 발표한 신곡 ‘까탈레나’도 이 같은 기대에 부응했다. ‘뽕끼’ 충만한 멜로디, 유치하지만 귀엽고 쫄깃거리는 가사. 유튜브에 뜬 뮤직비디오를 몇번이고 돌려보며 킥킥대다 아이디어의 기발함에 무릎을 쳤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바닷가 바위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세 여성은 인어다. 도마에 올라 춤을 추던 이들은 이내 스티로폼 용기에 누워 랩으로 포장된 채 팔딱거린다. 또 밥에 얹힌 ‘인어 초밥’이 되어서는 회전초밥집의 레일 위를 돈다. 포장된 인어에 붙어 있는 가격표는 개당 4000원. 옆 진열대에 놓인 문어는 7만8000원이다. 자세히 보면 인어에는 ‘양식’, 문어에는 ‘자연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인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3팩에 1000원으로까지 값이 떨어진다.

소비의 대상이자 상품화된 걸그룹은 초밥접시 위에 올라 스스로를 과감하게 희화화했다. 이들이 접시 위에 올린 건 자신들의 몸뿐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특상품이 되기 위해 온갖 스펙으로 단장하는 청춘들, 자본에 선택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한 경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들의 몸 위로 겹쳐 보인다. 초밥레일이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느껴질 즈음, 핑크 플로이드의 뮤직비디오 <더 월>에서 아이들이 소시지가 되어 나오는 충격적인 장면이 연상됐다. 튀고 싶은 걸그룹의 ‘셀프 디스’로 보기에 이 뮤직비디오의 현실 풍자는 신선하고 처절했다.

오렌지캬라멜 ‘깜찍한 표정의 나나’ (출처: 경향DB)


며칠 전 포털사이트에 ‘인명경시’라는 실시간 검색어가 떴다. ‘까탈레나’ 뮤직비디오가 KBS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인명경시란다. 초밥을 연상케 하는 모습과 비닐팩 안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이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여기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동안 심의라는 잣대로 문화콘텐츠에 내려진 규제들을 보면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주차금지 시설물을 발로 차는 장면에서 ‘공공시설물 훼손’ 명목으로 걸렸다. 아이돌그룹 H.O.T의 노래는 KBS에서 금지곡으로 분류돼 있다. 지난해 말 도박혐의로 기소됐던 토니안에게 출연 규제 조치가 내려지면서 덩달아 H.O.T 노래 상당수도 연좌제에 걸렸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고 공공 질서와 윤리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는 KBS는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나. KBS 사장이 “수신료의 가치를 전하는 대표적인 드라마”라고 언급한 <왕가네 식구들>이 KBS가 추구하는 문화콘텐츠의 기준이 될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억지 설정, 불륜, 납치 자작극, 며느리 오디션, 부부 강간에 이르기까지 온갖 막장 요소를 선보이면서 시청자들로부터 역대 최고 수준의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쯤 되면 거대한 문화 권력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들, 즉 대중문화콘텐츠 생산자들은 무척이나 헷갈릴 것 같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요즘 대통령이 앞장선 규제 개혁 총력전이 벌어졌다. 규제가 없어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권이 화두로 삼고 있는 창조경제를 구현할 무대는 문화콘텐츠 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상황에서 공영방송은 창작 의욕과 일자리 창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암덩어리’이자 ‘쳐부술 원수’에 맞서는 주체가 되어야 할 게다. 그도 아니라면 일관성이라도 보여주거나.

‘인어 초밥’으로 제기된 인명경시 논란을 보며 문득 드는 궁금증이 있다. 앞으로 호빵맨, 쿠키맨은 어떻게 봐야 하나. 아이돌그룹 EXO 멤버 시우민에게 만두라는 별명을 지어준 팬들은 반성해야 하나.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