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종편)은 방송의 다양성을 실현하고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며,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범시킨 방송이다. 그런데 오히려 다양성을 파괴하고 여론을 왜곡했을 뿐 아니라 저질 막말 방송을 쏟아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선정 당시의 사업계획을 거의 이행하지 않았고 이번에 낸 사업계획서도 현실성이 없다. 지나치게 많은 보도 편성을 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기도 했는데 보도 비율을 더 높이겠다고 하니 방통위를 우습게 보는 듯하기까지 하다. 사업승인 받을 때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승인 자체가 원인 무효다. 방통위도 그냥 재승인해주기에는 낯이 간지러웠던지 조건부란 단서를 달았지만 별 의미는 없다. 사업계획서를 성실히 이행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 및 공정성 확보방안을 마련하며 연도별 콘텐츠 투자계획을 준수하라고 했지만 공허한 조건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사후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과징금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엄포를 놓는 시늉을 하긴 했다.
하지만 사업자 선정 때 했던 계획을 이행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이 재승인해주는데 이번 계획을 지킬 이유가 없다. 숱한 편파와 왜곡 보도로 여론 지형을 교란한 그들에 대한 책임은 묻지도 않았다. 애초 심사기준, 심사위원 구성부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경기 규칙이 합리적이지 않았고 심판진도 일방적이었다. 심사과정에서는 의도적으로 감점을 축소하기도 했다. 지상파 재허가 심사에서는 시정명령 한 건당 10점이나 8점을 깎더니 종편에는 겨우 4점을 감점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승인해주기로 정해놓고 짜맞추기 심사를 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심사과정의 불합리와 부당성을 따지고 그 과정을 조목조목 짚고 낱낱이 밝혀야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문제들만으로도 재승인을 취소하고 다시 심사해야 할 정도다.
종편 재승인 결정 회의 시작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출처 : 경향DB)
절차적 정당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종편은 한국 민주주의의 암세포다. 우리의 현실인식과 여론 마당에 독소를 뿌려대는 천박한 흉기가 됐다. 이들이 날뛰는 것을 어떻게 제어하고 고삐를 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절박하다. 달랑 성명서 발표나 기자회견 규탄 집회만 하다가 관심에서 멀어지는 행태의 반복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집요하고도 일관된 싸움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지루하거나 답답할 수도 있고 탄압과 안주, 타협의 유혹이 이어질 것이다.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야당에도 큰 책임이 있다. 종편 탄생의 근거인 미디어법 개정을 그토록 반대했고 헌법재판소에 제소까지 했던 야당이 슬그머니 종편을 인정하고 출연 못해 안달이 난 듯이 보인다. 지난 대선 패배가 종편에 출연하지 않아서라는 해괴한 주장마저 나왔다. 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종편의 눈치를 살필 일이 아니다. 종편은 언론의 영향력이라는 흉기를 앞세워 국민 여론을 인질로 잡고 있는 인질범이나 다를 바 없다. 겁 먹고 인질범에게 굴복하는 순간 영원히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당당히 맞서서 시민들과 연대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
종편에 주어져 있는 특혜를 어떻게 폐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갖가지 특혜 가운데 광고특혜는 특히 중요하다. 종편의 재정적 토대이기도 하며 시청자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고리이기도 하다. 종편은 지상파와는 달리 중간광고가 허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광고허용량도 더 많다. 보도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 종합 편성을 하고 있으므로 지상파와 다를 바가 없는데도 유독 전송 방식이 케이블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이들에게만 특혜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중간광고에 부정적이므로 여론의 지지를 받기가 쉬울 것이다. 특혜를 폐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개정은 정치세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야당의 단호한 각오와 결기가 필요하다. 시늉만 내는 것으로는 어림없다. 의석이 적어서 어렵다는 변명과 패배의식을 버려야 비로소 희망이 보인다.
정연우 | 세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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