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무슨 신선함이 있니? 어젯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편집회의에서 편집장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칼럼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여기서 편집장은 내가 임의로 위촉한 와이프다. 나는 좀 전에 깨서 편집장과 상의 없이 그냥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감 몇 시간 남기고 두들기기로 결정해 버렸다.
첫째, 아저씨도 ‘쿨’할 수 있다는 새로운 문법을 두 스타는 만들어냈다. ‘백주부’라는 애칭을 가진 백종원씨는 전형적인 아저씨다운 얼굴과 몸매, 그리고 말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빅뱅의 지드래곤에 열광해온 나의 대학생 딸을 신도로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백주부는 방송에서 가장 잘 나가는 MC ‘구라’의 9단인 김구라, 홍진경도 꺾고 부동의 1위를 차지한 채 전설이 되어 퇴장했다. 그 핵심은 유저들과의 상호작용 능력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엘리트들은 공감 능력에서 심각한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공감은 상대에 대한 일방형의 관계라 노력하면 터득하기가 쉬운데, 상호작용 능력은 훨씬 고차원의 게임이다. 지금 한국의 리더들 중에는 이 두 가지를 터득한 고수가 적은데 그 상황에서 백주부라는 기이한 아저씨가 출현한 것이다. 요즘 쿨함을 터득하지 못한 수많은 게으른 아저씨들이 대통령 후보에 도전하는 현실과 무척 대비된다. 백주부의 공감과 상호작용의 문법을 익히지 못한 이들은 아예 지금 포기하는 것이 본인의 가족과 그 정당의 미래를 위해 훨씬 낫다.
혜성처럼 나타나 영화 <도둑들> 등 히트작을 만들어 오다가 최근 예상을 깨고 다시 <암살>로 전설을 이어가고 있는 최동훈 감독도 이제는 아저씨다. 나는 운 좋게도 486세대인 영화잡지 ‘스크린’의 전 편집장 및 발랄한 20대 여학생과 영화를 보러 가서 그들이 함께, 그리고 서로 다른 뉘앙스로 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에 놀랐다.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오른쪽)과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 역을 맡은 조승우._경향DB
나에게는 몇 년 전으로 착각되는 1987년 6월항쟁도 삼국시대 이야기처럼 고리타분하게 받아들이는 이 세대에게 최 감독은 아주 먼 일제강점기를 기가 막힌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환생시켰다. 이전의 486과 그가 속한 X세대의 인간다운 세상에 대한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꼰대’ 방식이 아니라 신세대의 포스트모던한 감수성과 절묘히 조화할 수 있음을 그는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가치와 대중성의 조화를 터득하지 못한 486세대 정치 리더들에게 이는 소비에트의 붕괴만큼이나 충격적이어야 한다. 물론 <워낭소리> 같은 탁월한 예술영화를 정치에서 추구한다면 그건 좋다. 하지만 시장에서 1등(정권교체)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들은 영화에 담긴 그 가치와 대중성과의 균형에 대한 치열한 모색에 경이로움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 균형 원리를 흉내 낼 수 없는 이들이라면 차라리 새로운 최동훈의 맹아를 가진 이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썼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이 두 스타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은 박근혜와 야당이 지키고 있지 못한 약속, ‘대한민국의 새로운 통합’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장모님은 백주부 레시피가 필요 없는 탁월한 셰프이고, 나의 편집장은 요리보다는 학문에 더 관심이 있어 백주부가 필요하다. 백주부의 만능간장은 그들 대화의 공통 주제이고 그들의 삶을 직접 변화시켰다. 저녁이 있는 삶을 가지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70대 할머니와 40대 여성이 즐겁게 대화하고 삶의 스타일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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