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 한국외대 교수·문화연구
2012년 대중문화판의 최대 사건은 뭐니뭐니 해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일 것이다. 유튜브를 타고 문자 그대로 “전 세계를 강타한” 그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역사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청한 동영상이 되었고, 빌보드 차트 7주 연속 2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대한 문화적 분석은 여러 각도에서 가능하겠으나, 유튜브 콘텐츠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제작되고 확산된 밈 비디오(meme video)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트랜스미디어(transmedia) 사례라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밈 비디오란 패러디, 패스티시, 매시업(mash-up)과 같이 수용자의 창의적이고 전면적인 참여를 통해서 원본 비디오나 콘텐츠로부터 상당 부분 변형되어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그리고 인터넷의 다른 매체들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영상 콘텐츠나 비디오 클립을 의미한다.
싸이의 흥겨운 말춤을 따라하는 수많은 댄스 커버 비디오가 대표적인 밈 비디오라 할 수 있겠다. 문화연구자인 헨리 젠킨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지적했듯이, 밈 비디오는 디지털 문화 콘텐츠의 확산과 수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터넷 문화의 매우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로 디지털 융합 문화와 참여문화의 핵심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밈 비디오는 수용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팬덤에 기반을 둔 최근의 디지털 문화 경향과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이 구단 공식 트위터에 올린 말춤을 추는 모습의 사진. (출처: 경향DB)
‘강남스타일’ 밈 비디오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트랜스미디어란 개념은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개의 미디어 플랫폼을 널리 이용하면서 이야기 자체가 확장, 심화, 변화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방식은 최근 동아시아의 대중문화 문법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프랑스 보르도대 홍석경 교수에 따르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서로 다른 미디어 플랫폼에서 상호인용적 또는 상호협업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으로, 콘텐츠의 깊이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신비함, 비밀스러움을 제고함으로써 갈수록 민첩하고 사로잡기 힘든 수용자들을 적극적으로 콘텐츠 수용자·팬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기도 하다.
새해가 되면 이러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텔레비전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유튜브 클립 등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얼마나 심화되고 또 새롭게 진화하는 양상을 보여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할 듯싶다.
사실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디지털 융합 문화의 핵심인 디지털 팬덤의 대표적 사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K팝 스타들을 중심으로 ‘글로벌’한 차원에서 공고하게 구축되고 있는 아이돌 팬덤이다. 올 한 해 ‘아이돌 장르의 전면화’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아이돌 그룹과 아이돌 스타들이 유비쿼터스하게 존재감을 드러냄으로써 역설적으로 아이돌에 대한 피로도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대중문화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압도적인 지위는 새해에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돌 팬덤은 이미 뮤지컬 시장으로 대거 이동했고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이제 뮤지컬은 창작이든 라이선스 공연이든 아이돌 스타를 주역으로 캐스팅하는 것이 기본적인 흥행공식이 되었으며, 이는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위 ‘K뮤지컬’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2012년 대중문화판의 마지막을 장식한 핫이슈는 아무래도 대선 후보들에 대한 패러디가 아닌가 싶다.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로 대표되는 대선 패러디물들은 진흙탕 정치판도 얼마든지 발랄한 문화적 상상력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차기 정부에서 이런 자유로운 문화적 표현들이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을지, 그래서 팍팍하고 건조한 우리의 일상적 삶을 얼마나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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