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방송을 전공한다고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휙휙 변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현기증을 느낀다. 속도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업계의 새 용어조차 온전히 접수가 되지 않는다. 현장에서도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지상파는 지상파대로, 종편은 종편대로, SO나 PP, 독립제작사들도 그 나름대로 이 변화에 대처하고 살아남는 방법을 찾느라 애를 쓴다.
그 중 MBC 하나를 콕 집어 이야기하려 한다. 경영 비법이나 최신 기술, 요즘 트렌드를 귀띔하려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도 무관하다. MBC가 쇠락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MBC가 살아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인연과 애정도 작용한다. 초등학교 시절, 정동의 MBC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니며 방송 일을 했던 적도 있고, 외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후 귀국해 첫 책을 낸 것도 MBC의 주인 격인 방송문화진흥회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이 지면에서도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칭찬하고 <PD수첩>을 비판했다. 나는 MBC가 정말 잘되기를 바란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했던 발언들이 자꾸 뇌리에 남아서이다. 기사를 보니 그 이전부터 비슷한 발언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온라인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돌아다니는 글들을 보면,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속 시원한 말이라는 극찬도 있고,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뭐가 잘못된 거다. 공영방송의 이사장이 극단적인 ‘빠’와 ‘까’를 몰고 다니는 아이돌이 되다니. 이건 MBC가 살아남지 못하는, 혹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방문진 이사장은 평범한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우리나라 방송에 영향을 준다. 구성원들의 반발과 각종 추문에 시달렸던 김재철 전 MBC 사장은 퇴임 이후 사천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냈다가 당내 경선 꼴찌로 탈락하는 망신을 당했다. 방문진이 진작에 본연의 임무를 다해 그를 일찍 해임했으면 어땠을까? 정치적 이유로 계속 감싸다가 이사회를 무시했다는 명분으로 3년 만에 겨우 해임 결의를 한 것은 정당했던 일일까?
MBC의 현실을 보자. 전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매체 신뢰도에서 2009, 2010년 2위였던 MBC는 2011년 이후 10위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전문가 1000명 대상의 연례조사 결과에서도 MBC는 2009, 2010년 1위에서 매년 한 계단씩 떨어지더니 올해에는 7위가 됐다. 일반인 대상의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역시 2009, 2010년 신뢰도 1위였던 MBC는 올해 6위로 떨어졌다. 신뢰도가 떨어진 대신 유익하거나 재미있기라도 했나?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시청자 만족도 평가조사에 따르면, MBC는 지상파 채널 4개 중 꼴찌를 했을 뿐 아니라 JTBC에도 뒤졌다. 6개 평가항목 중 신뢰성, 다양성, 유익성, 공정성, 공익성 5개 항목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떠난 지 2년 반이 넘은 김재철 전 사장 탓만 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MBC의 관리 감독을 책임지는 방문진이라면, 이 결과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고영주 이사장은 MBC의 신뢰도 하락을 지적하는 의원에게 국회의원들의 신뢰도도 낮지 않냐고 반문했다. 자체 조사는 1위라는 말도 했다. 애사심이 아니라 몰염치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흠잡을 데 없다고 했다가 서울시 반론을 고의적으로 무시한 증거를 대니 그제서야 “그 부분은 몰랐다”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정액제인 지역 MBC와 본사 간 광고 수익 배분방식을 정률제라고 우기기도 했다.
반드시 방송 지식이 해박한 사람만 방문진 이사장이 될 필요는 없지만, 이사장이라면 최소한 방송의 공적 역할과 책무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역사를 알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에게 필요한 전문성이다. 전문성이 있다면, 법원 판결로 해직이 무효화된 MBC 구성원들부터 마땅히 복직시키고 ‘유배’ 보낸 직원들이 제자리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야당 국회의원들과 야당 소속 시장을 반국가적 행위자라고 ‘확신’한다는 말은 진작 거뒀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결기로 짐작컨대, 고 이사장에게 공영방송의 윤리를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몇 해 전, MBC가 살기 위해서는 김재철 사장이 떠나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는 결국 떠났지만 여전히 MBC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정파성이 전문성을 압도하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존재이다. 국민의 일부에게는 영웅일지 모르겠으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MBC는 죽어갈지도 모른다. 고영주 이사장은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MBC가 살 수 있는 길이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그 중 MBC 하나를 콕 집어 이야기하려 한다. 경영 비법이나 최신 기술, 요즘 트렌드를 귀띔하려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도 무관하다. MBC가 쇠락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MBC가 살아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인연과 애정도 작용한다. 초등학교 시절, 정동의 MBC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니며 방송 일을 했던 적도 있고, 외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후 귀국해 첫 책을 낸 것도 MBC의 주인 격인 방송문화진흥회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이 지면에서도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칭찬하고 <PD수첩>을 비판했다. 나는 MBC가 정말 잘되기를 바란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했던 발언들이 자꾸 뇌리에 남아서이다. 기사를 보니 그 이전부터 비슷한 발언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온라인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돌아다니는 글들을 보면,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속 시원한 말이라는 극찬도 있고,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뭐가 잘못된 거다. 공영방송의 이사장이 극단적인 ‘빠’와 ‘까’를 몰고 다니는 아이돌이 되다니. 이건 MBC가 살아남지 못하는, 혹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방문진 이사장은 평범한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우리나라 방송에 영향을 준다. 구성원들의 반발과 각종 추문에 시달렸던 김재철 전 MBC 사장은 퇴임 이후 사천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냈다가 당내 경선 꼴찌로 탈락하는 망신을 당했다. 방문진이 진작에 본연의 임무를 다해 그를 일찍 해임했으면 어땠을까? 정치적 이유로 계속 감싸다가 이사회를 무시했다는 명분으로 3년 만에 겨우 해임 결의를 한 것은 정당했던 일일까?
MBC의 현실을 보자. 전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매체 신뢰도에서 2009, 2010년 2위였던 MBC는 2011년 이후 10위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전문가 1000명 대상의 연례조사 결과에서도 MBC는 2009, 2010년 1위에서 매년 한 계단씩 떨어지더니 올해에는 7위가 됐다. 일반인 대상의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역시 2009, 2010년 신뢰도 1위였던 MBC는 올해 6위로 떨어졌다. 신뢰도가 떨어진 대신 유익하거나 재미있기라도 했나?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시청자 만족도 평가조사에 따르면, MBC는 지상파 채널 4개 중 꼴찌를 했을 뿐 아니라 JTBC에도 뒤졌다. 6개 평가항목 중 신뢰성, 다양성, 유익성, 공정성, 공익성 5개 항목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떠난 지 2년 반이 넘은 김재철 전 사장 탓만 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MBC의 관리 감독을 책임지는 방문진이라면, 이 결과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고영주 이사장은 MBC의 신뢰도 하락을 지적하는 의원에게 국회의원들의 신뢰도도 낮지 않냐고 반문했다. 자체 조사는 1위라는 말도 했다. 애사심이 아니라 몰염치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흠잡을 데 없다고 했다가 서울시 반론을 고의적으로 무시한 증거를 대니 그제서야 “그 부분은 몰랐다”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정액제인 지역 MBC와 본사 간 광고 수익 배분방식을 정률제라고 우기기도 했다.
반드시 방송 지식이 해박한 사람만 방문진 이사장이 될 필요는 없지만, 이사장이라면 최소한 방송의 공적 역할과 책무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역사를 알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에게 필요한 전문성이다. 전문성이 있다면, 법원 판결로 해직이 무효화된 MBC 구성원들부터 마땅히 복직시키고 ‘유배’ 보낸 직원들이 제자리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야당 국회의원들과 야당 소속 시장을 반국가적 행위자라고 ‘확신’한다는 말은 진작 거뒀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결기로 짐작컨대, 고 이사장에게 공영방송의 윤리를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몇 해 전, MBC가 살기 위해서는 김재철 사장이 떠나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는 결국 떠났지만 여전히 MBC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정파성이 전문성을 압도하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존재이다. 국민의 일부에게는 영웅일지 모르겠으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MBC는 죽어갈지도 모른다. 고영주 이사장은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MBC가 살 수 있는 길이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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