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고영주 이사장이 지난 2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국감을 받는 자리에서 2013년 1월 보수단체 신년하례회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게 사실이냐는 질의에 “그렇다. 문 대표가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고 말했다”고 답변했다. 또 문 대표가 사법부 전체를 부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표는 “이런 극단적 편향이야말로 우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라며 그의 사퇴를 촉구했다. 공영방송사 이사장의 이런 인식 수준은 충격적이다.
고 이사장의 발언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이율배반 그 자체다. 고 이사장은 1980년대 부산지역의 대표적 공안사건으로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부림사건의 담당검사였다. 부림사건은 수차례의 재심을 거쳐 지난해 대법원이 피고인 전원에 대해 무죄를 확정한 바 있다.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했기 때문이다. 재심은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 판결의 당부를 다시 심리하는 비상수단적인 구제방법’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맡은 사건을 조작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반성하기는커녕 그는 ‘법원이 좌경화됐다’며 재심 결과에 불복했다. 나아가 죄 없는 이를 변호한 사람까지 공산주의자라고 하니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그는 또 문 대표가 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사법부 전체를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8월 한 전 총리가 대법원 판결에 불복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사법부를 부정하던 그가 남에게 사법부를 부정한다고 공격하는 행위야말로 이율배반이자 궤변이다. 그는 문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지목한 이유로 연방제 통일 지지자라는 것을 들었는데 헌법재판소 판례집은 연방제 통일방식을 포함한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에 대해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한다고 했다. 그가 법률가의 양식은 물론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상식을 지니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그를 중용해왔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교육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돼 상지대 등에서 비리로 쫓겨난 옛 재단이 복귀할 수 있도록 길을 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지탄받은 바 있는 인물이다. 이런 편향적인 사람을 보수의 대표적 인사인 양 대접하며 공직을 맡기는 것은 보수의 수준을 의심케 하는 일이다.
국정의 한 축인 야당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그는 시민으로서도 정상을 벗어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자가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공론장을 제공하고 여론 형성 역할을 하는 공영방송의 최고 정책 결정권자로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수치이자 박근혜 정부의 오점이다. 박 대통령이 왜 그를 그 자리에 가도록 놔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이 그런 극단주의자에게 맡겨진 방송이 정권에 이익이 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그를 물러나게 해야 한다. 그는 단 하루도 그 자리에 앉아 있어선 안될 위험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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