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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정치캠페인, 메시지가 미디어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예상대로’ 국회의 요구를 묵살할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시간을 끌기 위한 원맨쇼를 펼쳤다. 특히 ‘밥 먹을 시간을 달라’는 긴 요청은 8분짜리 ‘엑기스 동영상’으로 편집돼 소셜 미디어를 누볐다. ‘필리밥스터’라는 신조어는 한국 정치의 개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정 원내대표는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 반대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에 밥 먹을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청와대를 향한 충성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국민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정치 메시지는 좀처럼 원하는 곳에 원하는 내용으로 가 닿지 않는다. 후퇴하기는 쉽지만 전진하기는 어렵다. 망가지기는 쉽지만 날아오르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하루 3퀸틸리언(300경) 바이트씩 늘어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메시지를 원하는 곳에 정확히 내려놓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4일 새벽 국회에서 자신의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뒤 농식품부 서울사무소에서 굳은 표정으로 차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정치인의 동영상이 어제 토트넘의 손흥민이 미들즈브러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기록한 그림 같은 연속골 장면을 압도할 수 있을까. ‘필리밥스터’처럼 아주 심하게 망가지지 않는 한 그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먹고사는 일로 바쁜 서민들에게, 자식의 입학과 취업, 결혼 등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국민들에게 정치인의 메시지가 허용된 시간은 거의 없다. 심지어 자기들끼리의 언어로 구성된 장광설로 이루어져 있다면, 휴지통으로 직행하기 일쑤다. 정치 메시지의 경쟁자는 상대 후보가 아니라 너무나 바쁜 국민들의 시간과 관심이다.

 

메시지가 미디어다. 메시지가 좋으면 그것이 확산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최근 잠룡들은 잇따라 출마선언 아닌 출마선언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언론사들은 이를 기사화한다. ‘출마의사’ 자체가 뉴스거리이기 때문이다.

 

즉 정치인의 메시지가 경청할 만한 것이면 언제나 기사화되고 이 기사는 다시 링크를 타고 소셜 미디어에 전파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아요’ 숫자가 아니라 메시지의 질이다. 단순히 ‘출마의사’를 넘어 자신이 왜 출마하는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다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메시지가 미디어’라는 말을 처음 본 것은 몇 해 전 에이케이스 유민영 대표가 올린 짧은 글에서다. 2013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풋볼 선수 케이드 포스터에게 짧은 손편지를 보냈다.

 

앨라배마대학 풋볼 선수인 케이드는 오번대학과의 4강전에서 잇단 실수로 경기를 내줬다. 28 대 28 동점상황에서 날린 포스터의 킥은 골대에 이르지도 못했고 역전의 빌미가 됐다. 팬들은 포스터를 ‘공적’으로 비난했다. 이때 부시 대통령이 따뜻한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케이드. 살다 보면 좌절도 겪는 법일세. 시간이 지나면 좀 더 강한 사람이 돼 있을 거야. 항상 최선을 다하길 바라. 43대 대통령 조지 부시.” 케이드의 등번호도 43번이었다.

 

케이드는 편지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팬들의 반응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돌아섰다. 이 내용은 언론을 통해 전파되었고 부시 대통령의 인간적 이미지가 부각된 것은 물론이다. 유 대표는 글 말미에 “시의적절한 메시지는 그 자체로 미디어를 만들어 간다”고 했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질 것이다. 각각의 후보들은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투에 들어간다. 정책을 만들고 현안에 대응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분주할 것이다. 후보들은 이번 대선이 유례없는 ‘메시지 전쟁’이 될 것임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미디어 전략의 핵심이 메시지이고 나아가 메시지가 곧 미디어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30년 이상 세계의 민주적인 기관과 활동을 지원해온 비영리, 비정부기관인 국가민주주의연구소(NDI, National Democratic Institute)에 따르면 캠페인 메시지는 후보가 만일 당선될 경우 실행할 프로그램이나 계획이 아니다. 또 후보자가 읊어내릴 이슈들의 목록도 아니다. 단순한 캐치프레이즈나 슬로건도 아니다. 메시지의 한 부분일 수는 있지만 메시지 자체와 혼동해서도 안된다. “캠페인 메시지란 당신의 타깃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할 단순명료한 진술이다.”

 

1992년 빌 클린턴이 반복한 메시지는 이랬다. “공화당 리더십은 사회정체와 경기침체를 초래했다. 미국인들은 이제 변화할 준비가 돼 있다. 1992년의 선택은 명백하다. 변화하거나 계속 이대로 머물거나(Change or more of the same).”

 

그것이 후보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30초 안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유승찬 | 스토리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