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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볼거리 전쟁

어릴 적 매일 대문 안으로 배달되던 종이신문은 반가운 소식을 담고 있었습니다. 읽기 힘든 한자와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가득찬 신문에서 어린이의 흥미를 끌던 것은 네컷 만화와 TV편성표였습니다. 몇개 안되는 방송국의 프로그램 명과 짤막한 소개가 전부인 단순한 내용으로 오늘은 어떤 만화가 나올지, 또 온 가족이 함께 보던 코미디는 언제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명절이 다가올 때 두툼한 신문이 배달되면 며칠치의 TV 프로그램이 들어있는 편성표 묶음을 놓고 식구들 각자가 보고픈 영화나 특집 프로그램에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참 볼거리가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부록으로 들어있는 브로마이드 화보가 탐나 사온 잡지는 탐닉하다시피 문장 하나 하나를 몇번이고 한달 내내 읽었습니다. 맨 끝에 있는 독자 사연이나 펜팔 모집까지 읽어나간 기억 역시 볼거리가 귀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귀하던 볼거리는 케이블 TV와 종편의 시대에 접어들며 100여개로 늘어난 채널로 압도되어지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속 수많은 채널들로 만개되었습니다. 읽을거리 역시 PC 통신으로 데뷔한 작가들에서 시작하여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 속 개개인의 일상 기록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볼거리가 늘어나며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 화면 속으로 눈을 고정하게 되었습니다. 넓어진 화면에 몇개의 창이 떠있기도 합니다. 두개의 화면이 있는 핸드폰으로 위의 화면에서 드라마를 보며 아래 화면으로 게임을 하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보여집니다. 사람들의 눈이 모두 손안에 머물게 되며 지하철 역마다 쌓아놓고 판매하던 종이신문은 이제 추억이 되었고 객차의 벽마다 붙어있던 광고들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촬영과 편집 기술의 대중화, 각자의 요구를 따로따로 들어줄 수 있을 만큼 정보의 고속도로가 놓여지게 된 것, 고성능 스마트폰으로 각자가 스크린을 항상 바라보게 된 것이 환경적 준비였다면 사용자의 적응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디어 플랫폼의 전 지구적 확산, 수많은 콘텐츠로 교육받아 똑똑해진 인류의 진화, 다양한 취향과 소양을 가지게 된 콘텐츠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맞춤형 콘텐츠 추천과 편집의 행위까지 기계가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예전 거대한 스튜디오가 엄청난 장비와 인력으로 하던 일들을 이제는 1인 스튜디오가 해낼 만큼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면서 정보를 고르는 일도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뭔가 감추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구글 검색결과의 두번째 페이지에 놓으면 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을 모으고 싶은 분들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금요일, 토요일에 영상 올리면 진짜 경쟁률 빡셈’이라는 하소연이 올라옵니다. 거실 벽에 붙은 TV, 내 무릎 위에 있는 컴퓨터와 그 사이에 자리 잡은 핸드폰에 이르기까지 내 눈을 잡아끌려 노력하는 콘텐츠들은 화면마다 아우성입니다. 구독을 종용하는 크리에이터들의 목소리가 매 영상의 도입부나 엔딩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상점가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시장터 상인들이 단골을 만들기 위해 큰소리로 호객하는 장면과 오버랩되어집니다. 차이가 있다면 시장의 크기가 전 지구적이고 상인의 수가 인류의 수와 비슷해질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과 막말 같은 무리수를 써서라도 눈길을 끌고 싶어합니다. 윤리와 정의에 대한 규제나 합의가 미처 만들어지지 못해 생기는 시행착오이지만 결국 정의는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공급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한 콘텐츠가 전체 소비자에게 전달되던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볼거리 전쟁은 ‘무한도전’ 시대를 넘어 ‘무한경쟁’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새 시대가 전과 다른 점은 ‘누구나’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