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순부터 우리 사회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홍역을 치렀다. 조국과 그 가족의 유무죄 여부는 재판에서 결판날 것이다. 하지만 유무죄 여부와 무관하게 과잉 수사와 선택적 수사의 전형을 보여준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드높았다.
검찰 못지않게 비판을 받은 대상은 언론이다. 일부 정파적 언론과 대다수 언론의 보도 경쟁이 빚은 참상은 다시금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엄청난 양의 과잉 보도,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 사소한 사실만의 무가치한 보도, 취재가 없는 단순 받아쓰기 보도 등등 그동안 언론의 잘못된 취재 관행이 다시금 반복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언론 스스로 관심을 고조시킨 ‘조국’ 보도를 통해 시민들이 이제까지 비판받아 오던 취재 보도 관행의 문제를 여실히 목도한 것이다.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이런 문제점을 진단하려 개최한 세미나에서 이준웅 교수는 우리 언론이 ‘사실 충분성’의 질곡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fact)’이면 그 가치나 진실성 여부와 무관하게 보도하는 관행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같은 세미나에서 박영흠 교수는 사실 검증이 부족하고, 기자들이 사건을 인식하는 틀(frame)에 따라 사실을 취사 선택하며, 단독 경쟁의 압박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칼럼에서 정은령 박사는 시민 여론과 유리되어 있는 기자들의 인식, 투명하지 못한 취재 관행, 윤리성이 부족한 취재 관행 등을 지적했다.
이런 많은 지적들의 전부는 아니지만 문제의 대부분은 출입처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출입처제도는 기자들이 출입처에 설치된 기자실을 중심으로 안이하게 취재원들이 제공한 정보에 의존하여 기사들을 양산하는 잘못된 취재 관행을 정착시켰다. 미국이나 일본은 그 관행을 없애거나 전면적으로 개혁했지만 우리는 여전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KBS의 신임 엄경철 보도국장이 출입처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엄경철 국장은 출입처제도가 기자와 취재원 사이 유착으로 패거리 저널리즘을 야기했고, 출입처 중심의 기사가 시민의 관점과 요구, 그리고 필요를 배제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출입처제도 폐지의 길은 험난해 보인다. 내부 신망이 높다던 엄 국장의 임명 동의 찬성은 60% 초반이었다. 출입처제도 폐지 공약에 반발하는 내부의 의견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출입처제도를 폐지하고 제대로 취재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작동한 것은 아닐까? 학계만이 아니라 언론계 내부에서도 오랫동안 출입처제도에 대한 비판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없애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출입처제도에서 이루어진 안일한 취재 관행은 사건의 중요성 판단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출입처에서 제공한 ‘단순 사실’을 심층 취재를 통해 파악해야 할 진실과 그 의미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할 위험성도 있다. 지금도 조국 전 장관 아파트 단지에서 일명 ‘뻗치기’로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며, 등산 가는 조국과 그가 쓴 모자 취재에 집착하는 언론의 ‘집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출입처제도, 단순 받아쓰기에 익숙한 기자들이 시민과 사회의 중요성을 잊게 만든 것은 아닐까? 아파트 단지에서 하루 종일 버티며 중요한 역사의 현장을 찍는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무한경쟁의 시대에 언론이 살길은 차별화된 기사 생산이다. 단순 사실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취재 보도하는 과정은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단순 사실 취재에 투입한 인력을 빼내고 이슈 중심의 취재에 재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성과를 나타내고 호응을 얻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심층취재와 차별화된 기사만이 무한경쟁 시대에 언론이 살길이다. 지금 언론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KBS를 ‘성공하는지 두고 보자’는 자세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말고 생존을 위한 변화의 대열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다수 언론의 동시 변화가 개혁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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