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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방송판 아사리판

김평호 단국대 교수, 언론학

아사리판.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곳이나 그러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어디에서 온 말일까? 두 가지 설이 있다. ‘빼앗다’라는 뜻의 우리말인 ‘앗다’에서 온 말로, 빼앗는 사람과 빼앗기는 사람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는 것. 두 번째는 덕망 높은 스님을 지칭하는 범어인 ‘아사리’에서 기원했다는 것으로, 무질서하고 소란스럽게 보이는 아사리들의 토론 모습이 그런 상태를 뜻하는 말로 변용되었다는 것이다.

아사리판. 지금 방송판이 바로 그 모양이다. 첫째, 정권의 방송 빼앗기. 강제해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를 보자. ‘최시중 방통위원장 : KBS 후임 사장 인선이 중요해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려고 여러분들을 모시게 되었다.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 : KBS 문제가 매우 중요하니 다음 사장을 잘 정해야겠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 김인규씨를 사장으로 보내야 했는데, 낙하산 얘기가 하도 많이 나와 힘들어졌다. 유재천 KBS이사회 이사장 : 김인규 카드가 무산돼 후임 사장 임명 문제가 시급해졌다. 사장을 공정하게 잘 뽑아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방송 빼앗기의 연장선상에서 둘째, 조중동 같은 수구 기득권자들의 신문에 방송을 건네주고, 그 대가를 챙기려는 이 정권의 종합편성 방송정책 문제. KBS 수신료를 올리고 거기에서 풀려나는 광고로 종편 사업자들을 먹여 살리고자 이 정권은 물심양면으로 노력한다. 조·중·동 중 누가 되든 이 사업자의 방송과 신문, 정권, 나아가 기득권 세력은 장기적 권력유지 체제를 도모할 것이다. 권력 잡도리가 아닐 수 없다. 정치와 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강고한 협력체제를 생각한다면 종편이 사업성이 없다는 진단은 순진한 관찰이다.

이와 맞물려 셋째, 거의 반강제적으로 진행되는 KBS 수신료 인상 문제. KBS는 현재 2500원인 TV 수신료를 4600원, 3500원 등으로 올리려는 방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언론유관 단체나 많은 전문가들이 요구하는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 즉 정권홍보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KBS의 공정성 강화 조치, 그에 걸맞은 내부의 개혁, 또 해마다 불거지는 수신료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개혁 등의 문제는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았다.

지난 6월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의 수신료 반대 집회. 경향신문자료사진

넷째, 이권다툼으로 치닫는 케이블과 지상파 방송 간의 재송신 싸움. 지상파 방송은 케이블 사업자들이 프로그램 저작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바로잡겠다 하고, 케이블은 그동안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 해소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한다. 기실 지상파와 케이블은 오랫동안 묵시적인 상호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또 이 문제는 해결의 모델로 삼을 수 있는 해외 사례도 적지 않다. 이 지점에서 양자는 적절한 타협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서로 빼앗기지 않겠다며 드잡이에만 몰두하고 있다.

다섯째, 무엇보다 돈 좀 벌고 보자는 MBC의 후안무치함. MBC의 김재철 사장은 고발 프로그램 <후플러스>와 시사 프로그램 <김혜수의 W>를 폐지했다. 이유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시청률부터 올리고 난 뒤에 공영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돈이 있어야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 의미만 갖고 살 순 없다”는 것이다. 대신 김 사장은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물론 오락·예능이라고 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락 프로그램을 돈벌이, 시청률, 의미 없는 것들 차원으로 생각하는 한 결과는 돈도, 오락도, 공영성도 종래에는 잃고 만다.

그러면 방송판이 왜 이런 아사리판이 되었을까? 그것은 방송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힘과 논리에 깊숙이 찌들어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 구성원들이 이 찌든 구조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민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구원은 좀처럼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건대 그것이 어디 방송뿐이겠으며, 또 방송사 구성원들에게만 책임을 요구할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