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 |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선거 보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충분한 정보와 숙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시민’으로서 독자가 그의 투표권을 최선의 방향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사 선택과 작성 과정에서 ‘식견을 갖춘 시민’으로서 독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참여하는 시민’을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기획을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난 한 주 동안 경향신문의 선거 보도는 여러 측면에서 아쉬움을 낳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선거 관련 기사들에서 나타나는 소위 ‘내부자’ 시점이 우려스럽다. 상당한 양의 지면이 캠페인 전략을 평가하거나 정치적 발언과 행동의 숨겨진 의도를 추정하는 데에 할애되었는데, 언론은 이 과정에서 ‘감시자’로서의 시선보다는 정치의 내막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인사이더(insider)’로서의 시선을 드러낸다. 이러한 유형의 보도는 독자로 하여금 정치의 막후 과정을 들여다보는 ‘구경꾼’의 입장에 머물게 함으로써,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하는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할 수 있다. 대선 후보 간의 경합을 ‘프레임 전쟁’이라 명명하며 각 후보의 전략을 평가한 10월31일자 5면 기사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충분한 자료나 객관적 근거 없이 주관적으로 추정한 내용을 제시했으며 불필요한 전략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후보자 정책 관련 보도에서도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예년에 비해 정책 보도의 양이 증가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대부분 기계적 균형성을 감안해 후보자들의 공약을 병렬적으로 제시하거나 후보자 사이의 공방을 그대로 중계하는 데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요 대선 주자의 중소기업 관련 공약에 대한 10월30일자 2면 기사는 사실 전달에는 충실했으나 각 후보의 공약을 나열하는 것에 머물렀다. 후보자 사이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비교하거나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나 실질적 효과에 대한 전문적 검토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같은 날 6, 7, 8면을 모두 할애한 기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대선 쟁점 중 하나인 ‘정치쇄신안’에 대해 각 캠프의 정책담당자를 인터뷰함으로써 후보별 입장을 상세히 전달했으나, 역시 후보자들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비교는 이뤄지지 않았다.
개연성이 부족한 연성뉴스 역시 눈에 띄었다. 특히 11월3일자 1면 기사 ‘난, 달라’는 왜 그날의 톱기사로 배치되었는지가 의문스러웠다. 기사는 주요 대선 후보들의 선거 전략을 비교하면서 선거 캠페인을 마케팅에 비유했으며, 관련 기사(9면)는 세 후보의 패션과 이동 차량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물론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임이 분명하지만, 자칫 이런 기사들이 정치 후보를 상품으로, 유권자를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개념화하는 정치 마케팅의 흐름을 정당화할까 우려스럽다. 후보의 캠페인 활동 역시 언론의 중요한 보도 대상이지만, 흥미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시의 대상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같은 날 8면 기사는 바람직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후보들이 어디를 방문했고 어느 행사에 참여했으며 누구를 만났는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각 후보의 정책 방향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어떤 이슈’가 중요한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도 선거보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11월2일자 2면의 “대선 판의 세 후보…‘농촌 공약’이 없다”는 주목할 만한 기사이다. 세 후보의 대선 공약을 살펴본 결과 농업 관련 내용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을 적시했으며 농민들이 후보자들에게 외면받고 있음을 적절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유무역협정(FTA) 등 농업 현안들에 대한 정당한 관심을 요구한 것은 바람직한 의제 설정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소외되기 쉬운 시민들의 필요와 이해를 적극적으로 대표하는가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다. 국민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선거 국면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뉴스는 ‘시민성’을 배양할 수 있는 중요한 자양분이다. 뉴스를 읽음으로써 시민들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에 대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는 시민에게 있어 중요한 학습과 참여의 기회이다. 때문에 독자를 구경꾼에 머물게 하는 보도, 사실을 나열하는 데에 그치는 보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해당 이슈가 시민들의 삶과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들은 무엇인지를 충분히 설명할 때 언론은 독자를 대화의 광장으로 이끌어 내고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 시민의 역량을 튼튼히 키울 수 있는 선거 보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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