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 타이거 픽쳐스 자문·경제학 박사
제도의 기원,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왜 어떤 나라는 우측통행을 하고, 어떤 나라는 좌측통행을 하는가, 정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그걸 정하는 최초의 순간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같은 동양 문명권이지만, 우리는 밥을 수저로 먹지만, 중국에서는 수저로 밥을 먹으면 교양 없는 행위로 본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런 것들이 제도의 기원이다.
KBS는 공공방송이라고 하고, MBC는 공영방송이라고 한다. 도대체 뭐가 다른가? 그 제도의 기원으로 들어가면, MBC의 지분 30%, 6만주를 소유한 정수장학회, 바로 요즘 문제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바로 그 정수장학회가 나온다. 정수장학회의 지분을 그대로 인정하고 여기에 제도적 틀을 맞추려다 보니 공영방송이라는 희한한 제도가 생겨난 것이고, 이게 이번 대선에서 태풍의 핵이 되었다.
실제로 정수장학회가 MBC에 준 돈은 3억원이다. 그리고 1992년 3억5000만원에서 시작해서 2004년 이후로 20억원씩 매년 배당금을 가져갔다. 몇 년 전에 이 연구를 하다가, 3억원 내고 매년 20억원씩 받아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다면 나도 빚이라도 내서 투자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느껴졌다. 정상적인 비즈니스에서 상식적으로 얘기하는 원금 회수와는 전혀 다른 논리다. 그리고 좋든 싫든, 그게 우리의 역사다. 그건 인정한다.
MBC 노조 집행부가 사장실을 항의방문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아직 상장되지 않은 MBC의 주식이 상장되는 순간, 이게 MBC의 지분 30%에 해당하니, 3000억원 이상의 현실 가치로 돌아올 것이다. MBC 민영화에 대한 논의의 절반은 공영방송의 공공성 확보 나머지 절반은 3억원을 출자한 정수장학회에 다시 천 배 이상의 떼돈을 안겨주는 것이 정의로운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두고, 대한민국에서는 경제 정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소리다. 아마 누구든 여기에 문제가 있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된 것 중 가장 현실성 있어 보이는 것은 민주당 예비경선 중 손학규 캠프 일각에서 나왔던 방안이다. 손학규는 한국 정치인 중 협동조합에 가장 열성적인 사람이었고, 그러다보니 AP통신사가 그랬던 것처럼 MBC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수는 없느냐, 그런 고민을 한 것 같다. 스페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 식품회사 썬키스트, 이런 데가 다 협동조합이다. 안될 건 없다. 시민들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하면서 출자금을 내고,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 형태로 가면 MBC의 공영성을 살리면서도 시민들의 참여를 늘리고, 마치 농협이 농협법에 의해서 움직이듯이 별도의 법안을 만들어 정부가 잘 뒷받침하면 된다. 유일한 문제는, 3억원으로 30%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정수장학회 지분 처리 방식이다.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정수장학회는 이미 출자분에 대해서 충분히 보상을 받은 상태이다. 민간에서 정부 인프라에 들어갈 때 30년 사용권을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박근혜 후보가 며칠 전 기자회견할 때, 혹시 이런 이야기를 할까 열심히 봤는데, 그 얘기는 아니었다. 자, 이제 그가 결심하면 MBC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법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결자해지라고 했다. 오직 그만이 결심할 수 있다.
보수든 진보든, MBC 운영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면 된다. 이익이 나면 조합원에게 배당도 할 수 있다. 주식회사와 다른 협동조합의 의사결정 구조로, 지분 많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견제가 가능하다. 협동조합의 성공사례가 많기 때문에 성공여부는 걱정할 필요 없다. 이 정도 선에서, 진보와 보수의 MBC를 둘러싼 줄다리기를 사회적으로 정리하면 좋겠다. 보수 시민, 정 걱정이 되면 MBC 조합원으로 더 많이 참여하면 된다. 그게 지금의 이 이상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정상화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지금이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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