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선거보도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일은 후보들의 정책 검증이다. 그런데 이를 언론이 주도하기보다는 상대후보들이 주도하거나 독자들에게 덩그러니 맡겨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전자의 경우 경쟁하는 후보와 참모들의 입을 좇게 되어 정책 검증이 정략대결로 변질할 우려가 있고, 후자의 경우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은 내용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경향신문 또한 이 같은 문제들이 있다. 무엇보다 정책을 분석적으로 검증하지 못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있다. 후보자들의 정책이 충분히 완성된 것이 아니어서 발생하는 문제인지, 캠프에서는 설명했으나 취재과정에서 일부만을 요약해서 발생한 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앞의 경우도 보완취재를 통해 정책의 구체성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안철수 후보가 정치쇄신안을 통해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고 했다고 보도한다. 그런데 일부 총론 수준의 설명들만 있을 뿐 의원 수를 줄이면 몇 명을 어떻게 줄이자는 것인지, 선거구 전체의 구도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인지, 선출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결과가 예상되며 그 구조적인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구체적 분석이 없다. 일단 줄이기로 하고 나머지 사안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는 건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참모의 입을 빈 가설적 수준의 단문으로 된 언급, 예를 들어 “독일식 정당명부제도 여야가 합의하면 가능하다” 등의 짤막한 설명 말고는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일반국민들은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무엇인지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한 전문가의 언급마저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최장집 교수가 국회의원 수 축소안에 대해 “정치 그 자체를 축소하자는 방안”이라 했다고 보도하는데, 왜 그렇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주장의 구체적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사이 정책 논의는 후보 진영 간 언쟁으로 비화했다. 안 후보 측이 “국민이 원한다”고 하자 문재인 후보 측은 “포퓰리즘”이라 하고, 안 후보 측이 “국민의 요구에 귀 닫겠다는 것”이라 하자 “맏형처럼 잘 보듬고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한다. 보도대로라면 참으로 정책대결답지 못한 언사들이다.
분석적인 보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구체성이 떨어져 겉도는 논의로 이어지기 쉽다. 경향은 세 후보자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각 캠프 경제정책 수장들의 인터뷰를 통해 비교했다. 경제민주화는 후보들 모두 주장하고 있어 정책의 차이를 검증하기 좋은 의제이다. 그런데 지면을 보면 경향이 판단하는 경제민주화의 개념조차 분명하지 않다. 검증을 위해서는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용어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정의해 판단의 기준을 만들고 세부 구성요소들을 검토하고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정책이 옳은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특히 중요한 것은 ‘민주화’와 같은 광범위한 수준의 정치 의제는 선거 슬로건 차원에 머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보도 내용만 보면 세 후보 측 역시 정확한 개념을 제시하기보다는 여러 의제를 산만하게 엮어내거나 모호한 내용으로 설명한다. 문재인 후보 측과 박근혜 후보 측에 관한 보도에서는 개념 정의를 발견할 수 없었고 안철수 후보 측에 관한 보도에서만 “더불어 잘사는 것, 정의로운 것, 따뜻한 공동체”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이조차 정책적 정의라기보다는 캠페인 슬로건에 가깝다. 정책 정의란 매우 구체적이어야 하며, 따라서 과학적으로 분석된 구성요소들을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애매하거나 선언적 논의들만 오갈 뿐 정책 실현을 담보할 수 없다.
세 후보 진영 모두 재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는 핵심 요인이라 판단한다. 그런데 논리 전개 과정이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아 구조적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양극화 해소에 재벌 소유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면 그 과정적 메커니즘과 실현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납득이 가능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대중은 잘 준비된 친재벌적 논리에 쉽게 동요할 수 있다.
국정 전반에 관한 제대로 된 정책 연구를 하는 데는 적어도 수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정한 정치철학에 기초해 꾸준히 정책을 개발하는 정착된 정당정치가 필요한 이유도 이것이다. 권력 변동기마다 정치 환경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것이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숙의(熟議)민주주의, 즉 깊이 생각하고 분석하고 근거를 갖고 충분히 논의하고 상대방의 이유 있는 비판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여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민주적 과정이 하루아침에 오지는 않는다. 공정한 언론의 심도 있는 정책 검증이 더욱 절실한 이유이다.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옴부즈만]‘투표율 높이기’ 구체적 제안을 (0) | 2012.11.11 |
---|---|
[옴부즈만]‘시민 역량’ 살찌우는 선거보도가 필요하다 (0) | 2012.11.04 |
[시론]MBC 문제의 사회적 해법 (0) | 2012.10.26 |
[옴부즈만]후보자 입 의존 ‘인용 저널리즘’ 그만 (0) | 2012.10.21 |
[옴부즈만]불산사고 등 재난보도 심층적 접근을 (0) | 2012.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