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 | 한국외대 언론정부학부 교수
지난 한 주 동안 경향신문의 대통령선거 보도를 읽고 매우 실망했다. 가장 중요한 의제를 전하는 1면에서 대통령선거 관련 기사를 찾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대선과 직접 관련된 기사는 안철수 후보가 발표한 ‘계열분리명령제 도입’(15일)과 박근혜 후보의 검찰 개혁 공약에 대한 검찰의 반발(18일)을 전한 게 전부였다.
1면에서 고(故) 김지태씨의 진정서를 토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 매각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고발하고 정수장학회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인식을 비판했으며(16일), 새누리당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의 정수장학회 이사진 사퇴 발언을 비중있게 다뤘다(15일). 정수장학회와 유신 40주년을 조명한 기사가 약 40건에 달했다. ‘과거사 해결’이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라는 인식을 반영했다.
선거와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기사 6건(1면) 모두 취재원의 발언 전달에 충실했다. 한 쪽 취재원의 발언(인용부호 사용)을 제목으로 정했고, 본문에서는 취재원의 발언을 평가하는 추측성 술어를 사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정수장학회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입장을 보도한 기사(16일자 1면)가 대표적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정수장학회와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의 MBC 지분 매각 협의에 관한 박근혜 후보의 발언을 인용부호를 사용해 전했고 본문에서는 박 후보가 ‘밀실 매각 및 장학금 지원’을 “좋은 일”로 추인해 비판을 받는다고 해석했다. 정수장학회와 MBC 경영진의 지분 매각 협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16일자의 2·3·5면, 특히 17일자의 4면에 게재된 관련 기사를 읽고 난 후에야 박근혜 후보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은 편집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뉴스생산자의 주관적 평가가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취재원의 발언을 제목으로 활용하고, 그에 대한 기자의 평가적 입장을 전하는 뉴스 생산 관행은 사안을 이해하는 맥락을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특정 진영 편들기’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후보들의 캠페인 활동을 소개하는 기사 대부분은 양적 측면에서 ‘기계적 균형성’(17일 6면, 19일 5·6면)에 충실했다. 정책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찾기 힘들었다. 일곱 가지 재벌개혁과제에 대한 안 후보와 문 후보의 입장을 비교한 기사(15일)가 유일했지만,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비교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세 후보의 공약을 소개한 기사의 경우에도 이들이 발언한 내용을 인용부호를 통해 전했을 뿐이다(20일 4면). 후보 간 정책의 차이점을 비교한 정보를 찾는 독자와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에게는 더 이상 유용한 기사가 아니었다.
(출처 : 경향DB)
경향신문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정책 비교와 단일화 논의에 매우 높은 뉴스가치를 부여했다. 이북 5도민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두 후보의 사진(15일), 일곱 가지 재벌개혁과제에 대한 입장 비교(15일), 두 후보의 캠페인 전략(16일),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 발표와 문 후보의 정치쇄신 입장(18일), 야권 단일화 논의 부진(20일)을 전한 기사들이 이에 해당된다. 모든 기사들이 후보자나 캠페인 관계자의 입을 빌려 해당 사안을 조명하고(재벌개혁과제 입장 비교 제외), 캠페인 활동 중인 두 후보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게재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독자들에게조차 두 후보를 비교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공약을 다룬 기사의 수는 적었고 내용은 빈약했다. 여당·야당·무소속 후보가 내건 ‘경제민주화’ 정책은 칼럼(18일)과 사설(15·19일)에서 다루어졌다. 안철수 후보의 경제분야 멘토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경제기자회 정례포럼 발표내용(18일)을 요약 정리한 기사가 그나마 눈에 띄었을 뿐이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선거관련 정치현실을 조명한 기사도 거의 없었다. 유권자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 개선(투표시간 연장)과 환경문제(15일)에 관한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칼럼(2건)이 전부였다. 칼럼은 기고자 개인의 의견이므로 의제설정 영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언론사 차원에서 유권자의 선거참여를 저해하는 환경을 검토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차원의 논의를 촉진하고, 미래의 한국사회 공동체를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이슈를 개발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선거캠프의 미디어 전문가들은 특종을 쫓고 낙종을 두려워하는 기자들의 생리를 이미 간파하고 있다. 이들은 후보의 입과 선거캠프의 공식 취재원에 의존하는 선거뉴스 생산 관행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후보의 캠페인 활동에 의존하여 뉴스를 생산하는 관행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이다. 유권자가 필요한 이슈나 정책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보도, 후보 간의 공약과 정책을 비교분석하는 보도, 후보의 공식적인 발언이나 공약 그리고 정책 등에 대한 사실을 검증하는 보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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