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선거가 끝나면 선거기간 쏟아졌던 정책들을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경마저널리즘의 일반적 선거사후현상이다. 선거과정에서 초점을 승부에 두기 때문에 정책은 캠페인 승리를 위한 전술적 담론수준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표를 얻기 위해 제시했던 과도한 공약은 현실에 맞게 보정(補正)해야 한다”고 언론이 면죄부를 주는 현상마저 나타난다.
정책보다는 승부에 초점을 맞추면 선거 이후 언론의 관심은 새로운 권력의 구성원이 된다. 누가 새로운 권력자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 주된 관심사였으니 더불어 권력을 나누게 될 사람들에게 이목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언론은 새 권력에서 인사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비판적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권력사슬이라는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를 직시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냐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그들이 어떠한 정책을 수립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선거 이후에도 정책논의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선거에서 국민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정책을 통한 보다 나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들을 다시 공론화하여 그 장단점을 꼼꼼히 검토하고 문제가 있다면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선 이후 경향신문은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박근혜 당선인이나 주변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새로운 정권의 정책기조를 부분적으로 기사화하는 수준이었다. 인수위 활동이 시작되면서 ‘병사복무기간 단축’ ‘골목상권 보호’ ‘쌍용차 현대차 문제’ ‘언론 정상화’ 등을 ‘인수위 10대 이슈’로 선정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들 이슈는 사안의 중요성, 현실적 급박성, 당선인의 진정성 및 정책의 실현 가능성 등의 차원에서 검토되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대개의 경우 인수위에서 예산문제 등으로 인해 해결책 마련에 부심할 수밖에 없을 이슈들과 당선인의 입장이 모호하거나 정책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경향이 분석한 사안들이다.
필요한 일이지만, 아쉬운 것은 주요 이슈들 중 일부를 논의한 것일 수는 있어도 국정전반을 포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통일, 외교, 안보, 정치, 경제, 여성, 문화, 보건의료 등 수많은 분야들은 아예 논의의 대상으로부터 제외되거나 부분적으로밖에 다루지 못했다. 차기정권이 해야 할 정책들을 점검하는 엄중한 시기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정책적 주제들은 국정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경향은 대선 이후에도 당선인의 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논의를 확장하고 체계화하지 못해 대안제시에 미흡하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인수위 10대 이슈’ 중 ‘기초노령연금확대’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등의 사안은 비판만 있을 뿐 대안적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의 다른 이슈들도 마찬가지인데 대안은 체계적 논의라기보다 관련된 사람들을 대변하는 수준이거나, 인터뷰를 통해 몇 마디 인용하는 것이 고작이다. 선거는 끝났고, 대안적 정책의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현실론적 태도에 근거한 것일 수 있다.
정책은 한 번의 선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정치사회적 논의를 통해 완성되어 가는 과정적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과정에서 나온 다른 후보들의 정책이나 제3의 정책적 대안들도 함께 내어놓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낙선인의 정책들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거에 패배했다고 낙선인의 정책이 원천무효된 것은 아니다. 절반의 국민이 지지한 정책이라면 무겁게 받아들여 논의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같은 논의는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국민들이 정책적 차이와 갈등을 줄여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선거결과가 나오자 “52%는 환호하고 48%는 좌절했다”고 한다. 심지어 앞으로 5년이 “48%에게 긴 터널이 될 것”이라는 예견까지 있다. 저널리즘적 과장이 있겠지만 적어도 일부 국민들이 허탈해 하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민주사회에서 선거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도박이 아니다. 선거결과에 따라 상당수 국민들이 좌절해야 한다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특정 정치세력이 집권했다고 하여 모든 것을 얻거나 잃었다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된다. 박근혜 당선인의 말처럼 “100% 대한민국”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책의 갈등적 요소를 줄이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를 조정해 낼 수 있는 정책들로 다듬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는 언론이 깊이 있는 정책논의를 지속해야 한다. 성급히 단정하지 말고 인내하며 논의하자. 논의에 동참할 대통령의 열린 자세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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