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 |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지난주 최대 이슈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적격 논란과 검증 문제였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첫 인사였기에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헌재 역사상 유례없는 의혹들이 제기 되며 관련 인사청문회 과정이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국가의 주요 업무를 수행하는 지도층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역량과 자질을 갖춘 인물인지를 검증하는 과정에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은 해당 인물에 대한 다각도의 정보를 제공하고 검증의 주요 절차인 인사청문회 과정을 세세하게 보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언론 보도는 그의 개인적 비리나 의혹을 제기하는 데에는 충분했으나, 우리에게 ‘어떤 지도자가 필요하며, 어떻게 그러한 지도자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 보도는 개인화, 파편화, 극화의 편향을 나타냄으로써 정치 불신을 필요 이상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위험성도 내포했다.
안경 고쳐쓰는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출처:경향DB)
무엇보다 이번 인사검증 보도는 후보 개인의 부적절한 행위에 초점을 맞추면서 연성적이고 일화 중심적인 기사들을 양산했다. 이 후보자 관련 의혹들은 개인의 도덕성과 위법성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였지만, 동시에 헌법재판소나 사법부의 부적절한 관행이나 특권과도 관련된 것이었다. 또한 주요 인사를 추천하고 검증하는 제도의 문제점과도 연관돼 있다. 이 때문에 개인을 비난하고 그에 대한 부적격 판단을 내리는 것을 넘어서, 어떤 측면에서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지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인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를 개별 사안으로 파편적으로 다루는 언론 보도의 관행은, 사안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를 밝히고 그 내면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안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종결되더라도 언제든지 이와 유사한 문제가 다시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언론 보도가 ‘인사 검증’을 ‘정치 논쟁’ 혹은 ‘정치적 힘겨루기’의 문제로 ‘극화(劇化)’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지지하는 정치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이 이 사안을 두고 어떻게 대립하고 타협하는지, 그리고 결국 어떤 쪽이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애초 “결정적 하자는 없다”며 민주통합당의 의혹 제기에 “인격살인”이라고 맞섰던 새누리당도 점차 이 후보의 자진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방, 그리고 새누리당 내의 의견 갈등이 주요하게 보도되었고, 결국 1월24일자 사설은 새누리당에 더 이상 미적대지 말고 경기를 종료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속에서 ‘국민’의 목소리는 진지하게 경청되지 않았다. 이 사안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분석은 찾기 힘들었다. 여론조사에서 몇 퍼센트의 국민이 이 후보를 지지 혹은 반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확인되었듯이 ‘정치개혁’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요구는 절박하며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에 대한 열망도 강렬하다. 그러한 국민의 시점에 입각한다면, 언론의 ‘인사검증’ 보도는 한 개인의 적격 논란을 넘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의 조건을 숙고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한다. 예컨대, 행정, 입법, 사법부와 독립적인 헌법재판소의 수장에는 어떤 자질과 품성을 갖춘 인물이 요청되는지, 그리고 이에 비추어 추천된 후보가 얼마나 적절한지를 심층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해외 출장에 부인을 동행한 것보다 친일파 후손의 재산 환수에 대한 판결이나 정치적 편향성 문제가 더 중요한 부적격 사유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리더의 조건’이란 개인의 높은 도덕성이나 능력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업무의 주요 영역에서 지도층이 갖춰야 할 구체적인 조건은 무엇이며, 어떤 제도적 환경과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하는지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보다도 정치인을 더 믿지 못하는 척박한 우리 사회에서, 국민이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는 ‘리더’를 가지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차기 정부의 첫 번째 총리 후보가 지명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차기 정부를 구성할 주요 인사들에 대한 검증이 이어질 것이다. 후보자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그를 둘러싼 정당 간의 공방을 중계하면서 국민을 ‘싸움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인사검증 보도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시점에서, 그들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철저히 검증하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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