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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옴부즈만]추론 말고 근거 확보 뒤에 보도를

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일주일 동안 줄곧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관련 소식이 주요 뉴스로 보도되었다. 북한 관련 뉴스는 늘 정보원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보도되거나 기자의 추론에 의한 보도의 문제를 보인다. 


이번에도 여전했는데 경향신문은 3일자의 “북, ‘김정일 1주기’ 맞춰 외교고립 무릅쓰고 내부결속 포석” 기사에서 “~로 전망된다” “~로 보인다” “~할 가능성이 높다” 등의 추론에 근거한 진술이 무려 9차례나 등장한다. 반면에 관련자 혹은 전문가와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 경우는 북한이 로켓을 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당국자의 인터뷰 한 차례에 불과했다. 이에 따르면 이 시점에서 기자가 하는 추론은 성급하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이 옳더라도 그리고 추론이 그럴싸하더라도 충분한 근거를 확보할 때까지 보도를 보류하는 인내력이 요구된다.


4일자에는 워싱턴 특파원발로 북한의 로켓 발사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국내에서 작성된 기사와 큰 차이가 없다. 특파원이 쓴 기사라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은 취재할 수 없는 내용에 접근하여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쓴 기사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특파원의 생각이 중국이나 미국의 입장처럼 보도된다. 기자의 역할은 기사를 쓰는 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관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자신의 생각과 정보원의 주장을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검증해 보는 것 모두가 기자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일을 건너뛰고 작성된 결과물은 기사가 아니라 잘 포장된 설(說)이 된다.


 12월19일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통령뿐만 아니라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그리고 교육감도 함께 선출하는 날이다. 대통령직 외의 후보들에게 관심을 가져준 3일자의 문용린, 이수호 두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맞짱토론 기사는 매우 바람직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제의 선택이나 후보자들의 공약에 대해 철저한 상호 검증이 이뤄진 부분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두 후보가 상호 존중하는 태도가 묻어나온 부분이다. 후보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면 지지자들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지지자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정치 혹은 투표에 대해 냉소적 입장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두 후보는 서로를 철저히 존중하고 그러기에 극한 정책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맞짱토론은 추하지 않다. 이런 상호 존중의 자세는 이날 13면에 실린 두 후보가 함께 거리를 걸으면서 웃음을 머금은 채 대화를 하는 모습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선거에 임한 후보자들이 상호 존중하는 모습을 서울시교육감 선거뿐만 아리라 대통령 선거를 포함한 다른 모든 공직자 선거로 확대될 수 있도록 언론이 유도해 주기를 바란다.


7일자에는 유치원 무상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시의적으로 적절하며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을 설명하는 부분은 내용이 상세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전을 생각하면 경향신문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이 유치원 무상보육의 준비에 대한 점검보다는 왜 빨리 실시하지 않는지 재촉했던 사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정부가 왜 뻔히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대비를 안 했는지를 꾸짖고 있다. 언론은 왜 이런 문제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왜 그때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자는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한 복지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경향신문은 그동안 이런 공약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꼼꼼히 짚어보고 그 허점을 지적했는지 의문이다. 준비 정도와 관계없이 그런 복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지만 보도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식이라면 불과 몇 달 후 이런 복지정책을 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실시했냐고 또다시 비판하는 기사를 내놓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자 선거벽보를 붙이고 있는 선관위 관계자들. (출처: 경향DB)


4일자에는 공직선거법에서 금하고 있는 선거 벽보나 현수막의 훼손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기사가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점은 문제다. 자칫 생활고에 찌든 서민들의 불만을 정치와 정치인을 향해 분출하는 행위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으로 비친다. 


신문 기사가 윤리 교과서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불법행위를 용인하는 듯한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 자신의 분노와 불만을 불법적 행위를 통해 표출하는 것은 해당 후보자뿐만 아니라 이와 무관한 선량한 유권자,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에 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어설픈 공감은 그러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의 죄의식을 마비시켜 의도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그런 행위를 조장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정치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적 인식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언론의 역할도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