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창간 66주년을 맞아 ‘사회계약 다시 쓰자’를 지난해에 이어 다시 제안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8대 제안으로 ‘더 놀자 더 쉬자’ ‘1% 경제에서 99%의 경제로’ ‘패자부활전을 하자’ 등을 제시했다. 올해는 8대 제안에 더해 ‘칸막이를 없애자’ ‘집은 사는 곳이다’ ‘평화가 밥 먹여준다’ ‘증세를 이야기하자’ ‘보육은 사회적 책임이다’ 등 5가지를 더했다.
지난해 경향신문의 사회계약 다시 쓰기 제안은 정치, 사회 각 분야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년이 지난 지금 경향신문이 제안한 8개의 항목을 돌아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답보상태인 듯하다. 물론 ‘청년유니온’에 이어 ‘노인유니온’이 만들어졌고,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는 등 조금씩 사회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경향신문은 2011년 새로운 사회계약 쓰기를 제안하며 “잘 적응해서 버텨내는 것, 그것이 유일한 생존법인 양,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 듯 받아들인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한국사회, 사회계약 다시 쓰자, 2011년 10월4일자) 경향의 새로운 사회계약 제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에 공감했다. 하지만 ‘패자부활전을 하자’ ‘더 놀자 더 쉬자’ 등의 항목을 통해 제안한 사회변화의 움직임은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경향신문의 ‘사회계약 다시 쓰자’ 기획에서 아쉬웠던 점은 ‘구체성’이었다. 경향이 제안한 방향에 상당부분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방법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경향의 새로운 사회계약 쓰기 두 번째 논의는 시민들의 인식 변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들을 함께 전달했으면 좋겠다. 언론의 ‘의제 설정’ 역할도 중요하지만, 제안한 의제들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지 않으려면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에 참여한 청소년들 (출처: 경향DB)
경향이 올해 첫 번째로 제안한 ‘칸막이를 없애자’편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어린아이들조차 일찌감치 ‘어차피 나는 안돼’라는 패배감에 젖어있는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양극화, 고령화 등의 여러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중첩되어 있는 상황에서 ‘칸막이를 없애자’라고 말만 해서는 칸막이를 없애기 어려워 보인다. 자발적으로 칸막이를 빠져나온 것으로 소개된 30대 주부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에 서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세워져 있는 칸막이를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사례들도 함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더군다나 올해 경향신문이 제기한 ‘증세’ ‘주거’ ‘보육’ 등의 문제는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고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경향신문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다시 제안하면서 “이 사회를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하고, 그렇게 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 바로 대통령 선거 과정이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경향이 진단했듯 대선 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할 여러 정책들에 관한 논의는 거의 없어 보인다. 경향신문은 지난 4일 <이미지 선거, 공약은 뒷전>을 1면 톱기사로 배치해 대선 후보들이 정책경쟁은 하지 않고 서로 눈치 보기만 급급한 상황을 다뤘다.
경향신문 창간 66주년 특집조사에서 65% 이상의 응답자가 “차기 대통령으로 바뀌어도 삶을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답한 것도 지금 대선 후보들이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어디를 가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연일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지만,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향신문의 ‘사회계약 다시 쓰자Ⅱ’가 좀 더 실효성을 가지려면, 정치권의 정책 논의 부재와 전략상 다른 후보의 눈치를 보고 있는 행태를 더 엄격히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의제 제시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경향의 보다 철저한 관심도 필요해 보인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서 흉기난동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교육당국의 허술한 관리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경향신문은 3일자 사설 <학생안전 못 지키는 허술한 학교보안 시스템>에서 CCTV 관리 및 보안 인력 근무실태 점검과 담장복원 사업 등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이후 경향은 5일자 <학교범죄가 담장 없어서라며 “담장 설치”> 기사에서는 학교 담장설치를 비판해 독자 입장에서 당황스러웠다. 경향이 5일자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부 언론은 ‘열린 학교의 역설’이라며 담장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 등으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의 안전 시스템 강화를 위한 후속보도가 필요해 보인다. 경향이 사회계약 다시 쓰기 시리즈의 머리기사에서 말한 것처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야 하는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에는 ‘안전한 사회’도 포함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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