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해 주요 언론사 영업손익을 보면 신문과 방송의 명암이 확연히 갈라진다. 신문은 대개 전년도와 비슷한 이익을 낸 반면 방송은 TV조선과 SBS가 호전됐을 뿐, MBC 마이너스 966억원, KBS 마이너스 759억원, JTBC 마이너스 252억원 등 대부분 막대한 손실을 봤다. 공익성·공정성 등을 그런대로 지킨 세 방송이 저널리즘의 표준을 자주 일탈한 방송에 밀려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걸 보면 실망스럽다. 하면 안 될 일은 하고 해야 될 일은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에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건 하면 안 될 일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국민 3분의 2쯤은 중간광고에 반대하는데 방통위는 SBS 사장이 회장인 방송협회 뜻을 따르려 한다. 중간광고는 시청자를 짜증나게 할 뿐 아니라 정해진 광고물량을 재분배하는 것이어서 제로섬 게임이다. 종편방송 특혜는 일반화할 게 아니라 없애 버리면 다른 언론사에도 제 몫이 돌아가고 방송의 공익성도 해칠 일이 없다. BBC 같은 공영방송을 가지려면 39년째 동결된 수신료를 올려야 하는데, KBS2 등에 중간광고까지 허용하면 수신료 인상에도 저항이 커질 것이다.
방송시장의 공급초과와 극심한 상업경쟁은 이명박 정권이 보수 편향 언론·정치 지형을 만들려고 보수신문에 종편 4개를 인가해주면서 시작됐다. 보수정권은 유료방송 의무전송, 황금채널 배정, 1사1랩 ‘광고사’ 허가 등 특혜를 퍼부어 종편을 양육하다시피 했다. 종편은 JTBC를 빼면 선정성과 정파성을 생존 수단으로 삼아 방송생태계를 망쳐왔다.
채널A 기자가 ‘협박취재’를 감행한 것은 종편의 취재윤리 타락상을 보여준다. 취재윤리를 넘어 협박죄와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만약 검찰과 내통한 게 없으면서 검찰을 판 것이라면 사기죄에 해당한다. 물론 미수범도 처벌한다. 이 사건은 언론이 검찰과 유착해 선거와 정치판을 흔들려던 혐의를 받고 있기에 사실 여부에 따라서는 윤리와 법 위반 정도가 아니라 반민주적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다. 한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보도해 민주주의 회복에 기여한 동아일보의 계열사가 민주주의 공론장을 오히려 훼손하려 했다면, 종편의 무한 상업경쟁이 낳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보수언론이 ‘논란’식 보도와 ‘윤석열 때리기’로 사건 본질을 덮고, 메시지 검증 대신 ‘사기 전과’ 운운하며 메신저 공격에 나선 걸 보면 언론계는 자정능력이 없다. 법무부 감찰이나 수사가 없으면 일선기자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 지을 수도 있다. 녹취록에 동료 기자와 함께 만나거나 부장 등이 알고 있다는 내용도 나오지만, 이런 중대한 취재과정이 윗선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언론계 관행상 설득력이 없다.
방통위 관계자는 “사후적 요인이라 재승인 취소는 어려울 것”이라며 “조건을 더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박취재’는 사후적 요인이 아니라 감시기구인 방통위가 몰랐을 뿐이다. 재승인 심사는 3월16일부터 했지만, 채널A 기자는 한 달 전인 2월17일 문제의 편지를 보냈고 24일 이철씨 지인과 통화했다. 재승인은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보했다가 결정하는 게 옳다. MBN은 자본금 편법 충당 문제가 걸려 있고, TV조선은 공정성 부문 심사에서 과락점수를 받았다. TV조선은 전에도 법정 제재를 면하려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데 독립규제기관인 방통위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준사법기관 임무를 다해야 한다.
방송의 공공성 회복은 엄격한 심사를 토대로 재승인 여부를 서릿발처럼 결정할 때 가능해진다. 상업경쟁에 몰두하는 방송시장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방임하지 말고 방통위가 나서서 악화를 퇴출해야 한다. 방통위는 종편을 대거 인가하면서 공익성을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공언했다. 결과는 보수성향 목소리의 증폭과 시청자의 확증편향이다. 매체 선택 여과장치에 거품이 끼어 매체 다양성이 여론 다양성을 해친 꼴이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의 솜방망이 징계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뉴스 천국’을 만든 요인이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2년간 ‘언론 공약 이행률 0%’라는 평가도 있는데, 방통위 책임이 크다. 1기 체제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한상혁 체제도 개혁할 기회는 이번뿐이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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