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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언론의 기본 원칙들을 되돌아보자

최근 채널A 기자가 수감 중인 재소자에게 특정인에게 불리한 정보 제공을 요구하면서 ‘추가 수사로 혐의가 더해지면 형이 길어질 것’이라고 암시하고 검찰 고위 간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취재 협조 여부에 따라 가족의 처벌 여부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의 협박을 했다는 MBC의 보도가 있었다. 사실이라면 이런 협박 취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반언론 행태다. 일탈한 기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미 낮아진 언론의 신뢰도를 더욱 추락시킬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채널A 윗선이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우선 기자와 성명 불상의 검찰 고위 간부를 협박죄로 고발했다. 사건의 수사를 통해 기자와 기자가 언급한 검찰 고위 간부의 관련성과 행태가 명확히 밝혀져서 사실이라면 응분의 사회적 제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본질적으로 언론계에 던지는 또 다른 화두가 있다. 협박죄 수준의 협박을 하지 않았을 뿐 우리 언론 대부분의 취재 보도 과정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본질적 의문이다. ‘채널A 기자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식의 물타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채널A 기자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언론도 반성해야 할 지점은 없을까?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는 자신들이 채택한 신문윤리강령을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하여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제정하고 준수할 것이라 했다. 실천요강 2조 취재준칙은 “기자는 취재를 위해 … 비윤리적인 또는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자는 취재를 위해 개인을 위협하거나 괴롭혀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하였다. 취재보도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이 지켜야 할 기본원칙이라고 스스로 제정한 윤리강령 또는 실천요강을 채널A 기자가 읽어 본 적이 있을지 의문이다. 아니 언론인 직함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언론인 중 몇이나 윤리강령이나 실천요강을 꼼꼼히 읽고 이를 자신이 지켜야 할 행동준칙으로 삼았는지 의문이다.


여기에는 취재 시 위협하지 말라는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취재준칙, 보도준칙, 사법보도준칙, 취재원 명시와 보호, 범죄보도와 인권존중 등등 언론인이 취재보도 과정에서 지켜야 할 많은 원칙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일이 이 작은 지면에 다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이 생산한 보도, 프로그램을 향한 비판들이 바로 이 원칙들과 닿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실천요강은 성범죄를 보도하면서 범죄와 무관한 가족을 보호하라고 했다. 언론은 성범죄 보도 시 가족의 인권을 되돌아봤을까? 취재원은 밝혀야 하고 부득이하게 밝힐 수 없는 경우 그 이유를 언급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에는 익명 취재원을 활용한 기사들이 넘쳐나는데 언론들이 익명으로 한 이유가 뭘까? 보도 기사의 사실과 의견은 구분하라 했는데 사실인지 추측인지 예언인지 알 수 없는 기사들이 생산되는 이유는 뭘까?


윤리강령, 실천요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취재 상황과 관련하여 언론인들 스스로 제정한 각종 준칙들이 있다. 혹자는 좋은 보도를 하겠다는 마음 자세만 있으면 굳이 이런 강령, 요강, 준칙들을 읽지 않고 외우지 않아도 좋은 기사를 생산할 수 있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언론의 기사 수준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파적 이익, 상업적 이윤 추구를 앞세우는 경영진들의 압박에 시달리는 언론인들의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외려 신뢰도 추락을 극복하고 다양한 소통 플랫폼들과 경쟁할 수 있으려면, 즉 언론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양질의 기사나 프로그램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본 원칙들을 다시 점검하고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 융합자율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