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미디어 보도들에서는 기존 성폭력 범죄 보도와는 다른 양상이 보인다. 디지털 성범죄의 구조적 요인을 다층적으로 다루는 기사들이 대표적이다. 미투 운동 이후, 여성 기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가해자 중심의 보도 관행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범죄자의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그중 하나이다. SBS의 조주빈 신상 정보 단독 보도 이후 다수 언론사가 범죄자의 일상과 주변인의 반응 등을 ‘단독’ 타이틀을 달고 양산했다. 어떤 보도는 잔혹한 범죄 수법을 세세히 묘사한다. 다른 보도는 가해자가 평범한 사람 혹은 모범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가해자 신상 보도가 과연 보도의 공익성을 지니는 것인지 의문이다.
성폭력 범죄 보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중 하나는 대상화를 통해 피해자 비난에 집중하게 만들거나,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폭력이 아닌 성행동이라고 주장하는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반영하여 성폭력 범죄를 사소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특히 가해자 중심 보도는 가해자의 ‘삶’이 성폭력 범죄 관련 재판에서 형량을 줄이고 미래를 보장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이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성폭력 범죄에서 가장 오래된 문제 중 하나가 ‘피해자는 과거로, 가해자는 미래로 보내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피해는 씻을 수 없는 상처여서 미래가 없는 망가진 존재처럼 말하고, 가해자에게는 이제까지 모범생이었고 앞으로도 미래가 남아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물론 범죄자의 미래 교화는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중요한 이슈이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의 경우는 교화의 관점이 가해자의 미래 보장을 위한 감형으로 기울어져 있다. 디지털 성범죄 판결에서 ‘초범’ ‘반성 및 사회적 유대’ 등이 감형 사유로 자주 고려된다. 가해자가 어떤 남성이었는가를 보도하는 언론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반성 및 사회적 유대’라는 감형 요소의 서사를 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제 이 상황을 뒤집어서 가해자를 과거로 보내고 피해생존자의 미래를 말할 수 있는 언론 보도가 요구된다. ‘국제언론인동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s)’은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 보도에서 피해생존자를 존중하는 태도, 지엽적 내용이 아닌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맥락을 그리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피해생존자를 위한 정의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구조적이고 역사적 맥락들에 주목하는 기사들이 더 많이 생산되는 것이 필요하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여성의 몸이 재화가 되는 오래된 역사가 디지털 미디어 시대 누구나 쉽게 가담할 수 있는 산업이 된 현실을 보여준다. 제작·소비·유통이 분화되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은 성착취물의 피해를 전례없이 가속화한다. 언론을 통해 언급되기 시작한 이 의제를 좀 더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양형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필요하다.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초범’ 감형 요인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 피해가 일회적이지 않고 해당 영상물의 지속적인 소비와 유통을 통해 피해가 반복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상 정보가 쉽게 획득되고, 주변 지인들에게 영상물을 보낸다는 협박을 통해 피해 여성에게 벗어날 수 없는 속박과 공포를 안기는 사회, 이런 사회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가해자 엄벌만으로 피해생존자의 일상이 회복될 수 없다. 성폭력 범죄 피해생존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의 회복을 소망으로 꼽는다. 고통이 반복되고 지속되는 우리 사회에 대한 가장 엄중한 문책의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피해생존자가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언론이 이 부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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