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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정동칼럼]언론의 독립, 시민의 독립

언론의 자율성을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정치권력의 통제에 영향 받지 않는 ‘정치적 독립’이다. 둘째는 광고주와 소유주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경제적 독립’이다.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이 보장된다고 자동적으로 자율적 언론이 탄생하는 건 아니다. 기자 개개인이 자율성을 사적 이익 추구에 탕진해버리면 말짱 허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 개개인의 무능과 탐욕에서 자유로운 개인적 독립이 세 번째 기준으로 요구된다. 기자가 개인적 독립을 성취하려면, 취재보도의 전문적 기술과 윤리의식 및 사회정의에 대한 헌신이 필요하다. 물론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언론학자 야코보비츠는 언론 독립의 과정이 정치적 독립, 경제적 독립, 개인적 독립의 순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고, 개인적 독립을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강조했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의 독립은 어느 정도일까? ‘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적 독립은 신장됐지만, 자본의 통제는 심화되고, 개인적 독립은 답보상태’라는 것이 언론학자들의 전반적인 견해다. 물론 지금 KBS나 MBC를 보면 정치적 독립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착시일 뿐이다. 과거 군사정권 때 같은 강압적 통제가 없는데 낯 뜨거운 친정부적 논조로 일관하는 것은 방송사의 자발적 동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권·언유착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일부 간부들과 거기에 끌려가는 다수 기자들의 미온적 태도가 사태의 본질일 터이다. 정치적 독립보다 개인적 독립이 더 직접적인 사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KBS앞 국정원대선개입 보도 통제규탄 촛불문화제 (출처 : 경향DB)


이들을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이 미진한 상황에서 기자의 개인적 독립은 쉽지 않다. 정치적 압력과 경제적 압박을 오롯이 기자 개인이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뉴스타파는 개인적 독립의 전형적인 경우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겨레신문의 창간도 열악한 언론 현실에서 기자들이 집단적으로 개인적 독립을 추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최근 JTBC에서 공정보도로 주목을 받고 있는 손석희는 판단이 쉽지 않다. ‘언론인 신뢰도 1위’라는 브랜드 가치를 언론인의 개인적 독립의 결과로 볼 수도 있고 스타 아나운서가 누리는 대중적 인기의 효과로 볼 수도 있다. 만약 <손석희의 뉴스9>의 공정보도가 JTBC의 관행으로 정착된다면 손석희의 개인적 독립이 보도국 전체의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을 개선하는 사례로 평가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논조가 과거로 회귀한다면 시청률 올리기와 종편 재심사를 위한 한시적인 스타 마케팅에 동조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현재까지의 보도 내용만 보면, KBS나 MBC보다 결코 유리하지 않은 조건에서 훨씬 더 공정한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손석희가 한때 삼성 계열사였던 중앙일보 자회사인 JTBC 사장 자리에서 삼성무노조 경영을 보도할 수 있었던 힘은 자율성에서 나온다. 뉴스타파가 조세회피처에 회사를 차려 탈세한 인물들을 폭로할 수 있었던 것도 자율성 덕분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손석희의 자율성이 다수 대중의 신뢰와 인기를 조직 부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JTBC의 보장에 의한 것이라면, 뉴스타파의 자율성은 소속사의 통제를 거부하고 뛰쳐나온 기자 개인들의 결기에 의한 것이다. 공통점도 있다. 어떤 형태든 시민들의 후원이 있다는 것이다. 손석희는 다수 대중의 지지가 있고 뉴스타파는 후원금을 내는 열혈 시민들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형태의 언론 자율성이든 시민의 관심과 후원을 자양분으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권력의 압력과 자본의 유혹을 물리치는 면역력은 거기서 비롯된다. 손석희를 주목하는 정도의 숫자가 뉴스타파를 후원하는 강도로 언론현실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라. 편향적인 매체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용기 있는 기자들에게 격려 문자를 보내고, 구독과 절독을 통해 의사를 적극 표현하고, 경영난을 겪는 대안매체에 후원하는 시민들이 많아진다면? 아마도 지금 힐난하는 나쁜 매체 속에 개인적 독립을 열망하는 좋은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언론 독립의 네 번째 조건은 구독료가 공정보도를 가져다주리라는 환상에서 탈피하는 ‘시민의 독립’이 되어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