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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정동에서]막장의 ‘실검’ 장사

지난 6일 경향신문 온라인판은 넬슨 만델라의 타계 소식을 머리기사로 올렸습니다. 사형수에서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화합의 상징인 지구촌 최고 위인의 타계 소식은 꽤나 큰 뉴스지요.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르몽드 등 해외 주요 신문 누리집도 한결같이 머리기사로 전했더군요. 하지만 잘했다는 판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조회수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누리집 머리기사면 으레 기록하는 트래픽의 10분의 1 수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예고된 소식? 뉴스 판단 잘못? 동서양의 온도차? 온갖 상념이 들더군요. 의미·가치 대 실속·현실 사이에서 눈물을 머금고 회군했습니다.


최근 일본을 다녀온 선배 한 분이 페이스북에 사진을 남겼더군요. 그가 머물던 일본 지방도시의 호텔 엘리베이터 옆에 수북이 쌓인 조간신문 사진이었습니다. 신문 뭉치 곁에는 무료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더군요. 그것도 일본 최고 권위지였습니다. 신문대국으로, 한국에선 흔히 목도한 무가지 전쟁도 없던 그간의 일본 언론환경을 떠올리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한 풍경이었지요. 선배는 “종이신문 대국도 온라인의 공습에는 속수무책인 듯”이라는 글을 남겼더군요.


먼저 큰절부터 올립니다. 올 한 해 온라인으로 유통된 경향신문 기사를 사랑해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표시입니다. 동시에 제대로 된 온라인판을 만들지 못한 데 대한 송구함도 담습니다.


사실 고민이 많습니다. 온라인 저널리즘의 미래 때문입니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건지, 어디만큼 와 있는지, 도달하는 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 모든 게 안갯속입니다. 분명한 것은 종이신문의 호시절은 끝나가고 있고 매체환경은 놀라울 정도로 파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전문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종이신문을 읽도록 하는 것은 버터를 직접 만드는 일만큼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온라인 언론환경은 요즘 유행어처럼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상황입니다. 실제 온라인 뉴스환경을 보면 이런 막장이 없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온라인 뉴스생태계는 언론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지경입니다. 황색지야 그렇다 하더라도 너도나도 정론을 얘기하는 종합지의 누리집조차 낯뜨거운 기사와 사진들로 가득합니다. 이는 온라인 뉴스매체가 범람하고 유통구조가 포털로 집중되면서 튀는 기사·사진이 아니면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는 절박감에 따른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낚시성, 선정성 기사가 줄을 잇습니다. 어떤 이는 에로 저널리즘으로 표현하더군요. 그뿐입니까. ‘실시간 검색어(실검) 장사’라는 것도 합니다. 네이버의 실검을 좇아 기사를 쓰는 것이지요.


예컨대 이렇습니다. 연예인 ㄱ씨의 열애설이 실검 1위에 걸린다고 합시다. 그러면 ‘ㄱ씨는 누구’ ‘ㄱ씨가 사귀는 ㄴ씨’ ‘ㄱ씨 과거 발언’ 등 연관 기사를 시간차로 만들어 내보냅니다. 기사 작성이 한계에 부딪히면 전혀 다른 기사에 실검을 억지로 끼워넣어 검색에 노출되게 합니다. 스포츠·연예매체는 그렇다 하더라도 종합지들조차 그런 행태를 합니다. 일부 매체는 검색어 전담팀까지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국정원의 댓글 작업은 새 발의 피입니다.


후배 기자가 실검 기사가 조회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봤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를 몇 개 선정해 연관 기사를 생산한 뒤 조회수를 들여다봤습니다. 첫번째 기사를 송고한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수천건의 트래픽이 기록되더군요. 하지만 15분쯤 지나자 타 매체가 생산한 비슷한 기사에 묻혀 조회수는 급감합니다. 다른 내용으로 다시 기사를 만들어 올렸더니 조회수가 또 늘어납니다. 왜 그렇게 검색어 장사에 목을 매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하지만 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이한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온라인 광고주는 트래픽 건수에 따라 광고를 줍니다. 인터넷 매체들에 검색어 장사는 매우 쉬운 돈벌이입니다. 뚜렷한 온라인 수익모델이 없는 기존 신문사들도 진흙탕 싸움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사실 마케팅 측면에서 이는 하책입니다. 스스로 씨를 뿌리기보다는 남이 공들여 길러놓은 수요를 가로채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옳지 못하다는 것을 다 알지만 현실에 함몰돼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모르는 사마리아인보다 익숙한 악마가 낫다는 것이겠지요.


누리꾼들이 이런 비겁한 행태를 모를 리가 없지요. 자연스럽게 저널리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기실 신문사에 대한 최대 위협은 종이신문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현실보다는 신뢰할 만한 매체였다는 그간의 역할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마당에 유료화니 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해를 앞두고 경향신문 온라인은 정면 승부를 택하고자 합니다. 신문 본연의 금도를 지키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경향신문 온라인을 지켜봐 주십시오.


박용채 디지털뉴스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