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언론 노동자들이 공영방송 정상화와 방송광고판매대행사(이하 방송광고대행사)법의 입법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전국언론노조는 23일 서울 여의도에서 파업 찬반투표에 참가한 전국 70개 사업장 조합원들이 모인 가운데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전국언론노조가 총파업을 벌이는 것은 2009년 7월 이후 2년 만이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에서 무참히 짓밟힌 언론의 현실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오늘은 우리가 그간의 침묵을 깨고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서는 날”이라고 선언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는 이 나라 언론 환경을 조선·중앙·동아·매경의 종합편성채널이 좌우하는 또 다른 4대강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4대 족벌·재벌 신문에 언론시장이 황폐해지는 현실을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엄경철 KBS새노조 위원장은 “종편이 약탈적 광고 영업을 시작하면 지상파 방송의 기자·PD들도 광고영업 전선으로 떠밀려 결국 저널리즘이 훼손될 것”이라며 “KBS는 <개그콘서트> <해피선데이> 등을 연출하던 보석 같은 PD들이 종편으로 빠져나가면서 이미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노조가 총파업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회가 방송사와 기업 간의 광고 직거래를 막을 방송광고대행사법 제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헌법재판소가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독점체제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법 제정 논의가 불거졌지만 국회는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손을 놓고 있다.
언론 종사자들은 연말 개국을 앞두고 있는 종편이 입법 공백을 틈타 기업과 광고 직거래를 본격화할 경우 광고시장이 혼탁해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지상파와 신문의 광고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종편이 기사와 광고를 맞바꾸는 식의 영업을 할 경우 시장질서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매체 인지도와 광고 영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방 언론과 중소 매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비판적 시사프로그램 폐지·불방, 도청의혹 연루 등으로 얼룩진 KBS와 MBC의 공영성 회복도 총파업의 주된 화두다. KBS는 민주당 대표실 회의를 도청해 한나라당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지만 ‘경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 적극적인 진실 규명에 나서지 않고 있다.
MBC는 김미화씨 등 일부 출연자를 퇴출시키고 사회참여 연예인의 출연을 불허하는 ‘소셜테이너법’을 만드는 등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언론노조는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낙하산’ 사장에 있다고 보고 ‘공정방송 부적격 사장 퇴출’을 정부에 요구할 방침이다. 언론노조는 이 밖에 지역MBC 강제 통폐합 저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청부 심의 중단, 보복인사 철회 및 보도·제작 자율성 보장 등을 포함한 ‘10대 요구 사항’을 발표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언론노조의 총파업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국민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투쟁을 BBC나 알자지라 등 외신을 통해 접하고 있다”며 “언론이 외국 시위는 자세히 전하면서 국내 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신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담하다”고 말했다.
3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언론노조 총파업 지지 연대회의’는 총파업 지지 선언문을 내고 “언론인뿐만 아니라 사회참여 연예인에게도 ‘기계적 중립과 균형’의 잣대를 들이대며 방송 참여조차 원천봉쇄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현실”이라며 “총파업이 언론인만의 투쟁이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세력이 함께하는 연대의 장이 될 것임을 밝히고 전폭적인 지지와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이날 출정식을 시작으로 이달 말까지 10대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압박 수위를 높여가기로 했다.
특히 ‘2차 집중 상경 투쟁’이 예정된 25일에는 국회의원 전원 면담과 한나라당 규탄대회를 추진하고, 같은 날 오후 7시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자유수호 시민 문화제를 개최해 시민들의 지지와 동참을 호소한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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