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2면에 게재된 ‘깊어가는 시름’이라는 제목의 사진에 등장하는 밀양시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에 나선 할머니의 모습은 참으로 절박해 보였다. 다수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공공시설이 들어서는 지역 거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피해는 너무나 당연히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왔던 우리 사회에 소수자 권리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다룬 기사들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전력(한전) 측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맹점을 지적한 23일의 ‘밀양 송전탑 전력 수급 상황 시급한가’ 기사의 경우는 독자들의 판단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주제의 중요성과 주장에 대한 논리적 반박의 우수함과는 별도로 아래의 두 가지 아쉬운 대목이다.
첫째는 이 사태를 정부의 강제수용 방식 개발과 원자력발전 확대 정책, 혐오시설을 기피하는 님비 문제가 복합적으로 충돌한 결과로 보는 해석이 타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거주민들이며 인터뷰 내용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주장은 지금 사는 곳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더라도 안전과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이를 보장해 주지 않는 한 공공이익을 내세운 토지 강제수용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송전탑을 통해 전송되는 에너지의 원천이 수력발전인지 원자력발전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고압 전류가 흐르는 대형 송전탑이 주민의 건강과 생활에 해가 된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원자력 에너지를 반대하기 때문에 시위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의 원인 중 하나가 원자력 에너지 정책에 대한 반대 때문이라며 녹색당 관계자의 인터뷰 내용을 싣고 있다. 앞으로 이 사태는 원전 반대 운동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목격되는 현실에 충실한 분석은 송전탑 주변 지역민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배려의 부족 그리고 피해를 감수해야 할 대상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토지 강제수용 방식에 대한 문제이다.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위한 공권력이 투입된 20일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입구 나무에 밧줄이 걸려 있다. (경향DB)
둘째는 밀양시 주민들이 자신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방법의 부적절함 혹은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 없다는 점이다. 똥물과 고춧가루물의 투척, 분신자살, 자살용 밧줄을 나무에 매다는 행위, 속옷을 벗어던지며 현장 접근을 방해하는 행위는 모두 폭력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일의 ‘할머니들이 투사가 된 이유는’ 등의 여러 기사에서 이번 사태는 한전과 정부의 부적절한 공사 강행 때문이기에 이에 대응하는 주민들의 행위는 부적절할지는 모르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이를 정당화한다. 어떤 경우에도 목적이 수단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리고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피해를 입게 된 주민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런 방식의 문제점에 대한 분명한 지적이 필요하다.
통계자료를 활용한 기사는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같이 정보 수용 과정에서 독자 개인의 주의력이 낮기 때문에 기자에게는 오히려 자료의 해석에 보다 철저한 주의가 요구된다. ‘체육시설 많은 강남3구 주민 의료비 지출 강북보다 적다’라는 23일 기사는 통계자료가 잘못 해석되어 독자들이 그릇된 판단을 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기사의 근거인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체육시설의 수가 많은 자치구의 주민들이 그렇지 않는 자치구에 비해 의료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리고 강남3구가 강북지역 자치구에 비해 체육시설이 많다. 독자들은 이 내용을 보고 강북지역에 체육시설이 적어서 주민들이 건강관리를 잘 못하고 있으니 자치구 행정당국은 체육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의료비 지출, 즉 건강이 나빠진 원인을 운동 부족에서 찾을 수는 있어도 운동 부족이 반드시 운동시설의 부족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람들이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땅한 운동시설을 찾을 수 없기 때문 외에도, 운동시설 이용비의 부담, 운동을 할 시간의 부족 등 쉽게 다른 요인들을 찾을 수 있다.
만약 체육시설 부족이 강북지역 주민들의 운동 부족 원인이라면, 체육시설을 이용하려고 신청하는 사람의 수가 이용 가능한 사람의 수보다 많아야 한다. 기사의 어느 곳에도 이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운동 부족의 원인이 체육시설 부족이 아니라면, 지자체가 체육시설을 확충하게 되면 이용되지 않는 유휴 시설과 공간만 늘어날 뿐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세금 낭비라는 비난에 직면한다. 따라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통계 자료를 활용하는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에게는 통계 자료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런 능력의 배양을 위해 언론사는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이를 널리 시행해야 할 것이다.
정일권 |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성 일자리’ 사회학적 분석을 (0) | 2013.06.10 |
---|---|
[시론]기로에 선 종편 (0) | 2013.05.29 |
윤창중 보도 프레임과 저널리즘적 상상력 (0) | 2013.05.20 |
[사설]KBS의 황당한 ‘윤창중 보도지침’ (0) | 2013.05.13 |
‘갑의 횡포’ 다면적인 접근을 (0) | 2013.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