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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 사측 10여명이 제작 '초유 사태'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이 물리력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4월 말 노조에 의해 배임 혐의로 고발된 장 회장이 편집국장 교체 인사를 하며 시작된 노사 갈등이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주말인 지난 15일 오후 장 회장은 박진열 사장·이진희 부사장 등 임원진과 편집국 간부들을 대동하고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진빌딩 15층 편집국에 들어섰다. 장 회장은 외부 용역 20여명을 진두지휘하며 당직 근무 중이던 기자 2명을 강제로 밖으로 쫓아낸 뒤 편집국 문을 걸어잠갔다.

 

 

 

 

이후 사측은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e메일을 통해 “회사에서 임명한 편집국장(직무대행 포함) 및 부서장의 지휘에 따라 근로를 제공할 것을 확약한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퇴거 요구 등 회사 지시에 즉시 따르겠다”는 내용의 ‘근로제공 확약서’를 배포했다. 이 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편집국에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송고하는 집배신시스템도 함께 폐쇄됐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기사송고시스템에 접속하면 “로그인 계정 ○○○은 퇴사한 사람입니다. 로그인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뜨고 있다. 사측이 모든 기자들을 퇴사 처리하고 아이디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사측이 일방적으로 내민 확약서에 서명하지 않은 기자는 지면 제작에 일절 간여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사측의 편집국과 집배신시스템 봉쇄로 일터에서 쫓겨난 한국일보 기자 130여명은 16일 본사 건물에서 편집국 개방을 요구하며 온종일 사측과 대치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농성을 시작한 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오전 11시30분쯤 편집국으로 1차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사측이 안에서 잠근 문을 열기 위해 열쇠수리공을 동원했지만 이중·삼중으로 잠금장치가 설치된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측은 15층과 연결된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를 모두 폐쇄했다.

 

 

한국일보는 이날 오후 인사를 통해 하종오 논설위원을 다시 편집국장 직무대행에 임명했다. 지난달 8일 기자들이 압도적인 반대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하 위원을 재차 편집국장 자리에 앉혀 기자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그동안 사측의 인사발령을 거부해온 편집국 간부 4명에게는 자택 대기발령이 내려졌다.

 


이날 신문 제작은 하 위원의 지휘로 사측에 동조하는 간부급 기자들이 중심이 돼 이뤄졌다. 비대위 관계자는 “간부급 기자 7명과 평기자 5명이 통신사 기사를 베끼고 스포츠한국 등 자매지 기사까지 활용해 신문을 만들고 있다”며 “편집기자들이 없어 서울경제 등 계열사 편집국 인원까지 총동원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은 회의를 열고 “정상적인 신문 제작을 막는 작금의 상황을 개탄한다”며 사설 게재 거부 의사를 사측에 통보했다.

 

 

사측은 퇴직한 임원들에게까지 사설 집필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원 노조위원장은 “한국일보를 사유화하기 위해 신문의 심장인 편집국에 용역깡패들을 동원하고 기자들의 출입을 막는 건 상식 이하의 폭거”라며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 기자 170명은 편집국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회장의 수족 10여명이 파행으로 ‘짝퉁 한국일보’를 만들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사측은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의 원인은 지난달 1일부터 40일 넘게 회사의 인사 조치에 불만을 품은 일부 편집국 간부들과 노조 집행부가 편집국을 점거한 채 신임 편집국장과 부장들의 편집국 운영을 방해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조치는 편집국 폐쇄가 아닌 정상화를 위한 적법하고 불가피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17일자 신문에 낸 사고에서 “신문 제작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지면 수를 평소보다 줄이는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노조 비대위는 편집국 폐쇄와 기자 아이디 삭제 조치 등을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사원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또 장 회장에 대해서도 기존의 배임 혐의 외에 새로 제기된 의혹들을 추가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한국일보 노조는 사옥 매각 과정에서 회사에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 혐의로 장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검찰은 관계인 조사를 모두 마치고 장 회장의 소환 조사만 남겨둔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장 회장 수사 결과가 한국일보 사태의 향방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형규·김한솔 기자 fideli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