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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종편, 잔치는 끝났다

정인숙 경원대 교수·신문방송학

 지난 2년여 미디어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종합편성과 보도전문 방송채널사업자(PP) 선정 드라마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4개의 종편사업자와 1개의 보도채널사업자가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장의 말대로 ‘집단지성이 만든 최선의 결과’로 보인다. 전문가 누구나 짐작했던대로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신문들이 모두 종편사업자로 선정되었고, 연합뉴스는 과거 경영부실로 인해 스스로 포기했던 보도채널을 당당히 되찾았다. 그러나 선정 결과를 둘러싼 항간의 잡음은 어느 때보다 무성하다. 탈락한 사업자들이 신문사들이다보니 패자유언(敗者有言)이 볼 만하다. ‘승자의 저주’ ‘무더기 종편 재앙’ ‘특혜’ 등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과격한 표현들이 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만약 조중동 중의 어느 한 신문사가 탈락했다면 어땠을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숱한 반대와 절차상의 무수한 흠결을 낳으면서까지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고 사업자 선정을 끝마쳤지만 정부와 사업자가 스스로 경계할 일은 지금부터다. 탈락자들의 울분이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승자들은 새해 벽두부터 개념없는 기사들로 신문 지면을 장식하였다. 종편의 시장 안착을 위해 낮은 번호의 황금채널을 배정하고, 광고규제를 완화하며, KBS 광고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방송법 상에 종편채널을 의무재전송 대상으로 놓은 것도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인데 해당 신문사들은 사업자 선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정부를 대놓고 압박하고 있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일인데 언론사가 사설과 기사를 동원해서 자신의 사업이익을 보장하는 정책을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론의 도를 넘어서는 일이다.

미디어행동과 보건의료단체연합,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등 언론·시민단체들이 31일 서울 로구 방송통신위원회 건물 앞에서 ‘ 사업자 선정 원천 무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김기남 기자

 정부는 메이저 신문을 가진 방송사업자들이 앞으로 이런 식으로 전개할 도발적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후발사업자 또는 유치산업의 순조로운 시장 진입을 위해 비대칭규제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해당 사업자의 주장에 떠밀려서 정책 수단을 도입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다른 사업자와의 형평성과 전체 산업의 발전에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디어 빅뱅의 격랑 속에서 시장이 시장의 논리대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사업자들은 새롭게 뛰어든 방송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방송 소비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독자적 전략 경영으로 승부해야 한다.

 선정된 대다수 사업자들은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뉴스매체를 가지고 있는 미디어 복합그룹들이다. 5개 사업자의 자본금 총액이 1조6천억에 이르고 있으니 1995년 케이블TV 도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미디어 시장개편과 지각변동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시장개편이 시장 논리에 의해 자생적으로 커진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종편이라는 자식을 낳은 부모의 심정이 되어 끝까지 종편 살리기 정책을 전개하고자 한다면 우리나라 전체 미디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정부는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한 이상 산업정책과 여론정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언론학자들은 지금부터 종편 이전과 이후의 여론다양성 변화와 미디어 콘텐츠의 질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하게 될 것이다. 4개의 종편채널과 1개의 보도채널에 대한 생존 전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부분이다. 사업자들이 자기 이익을 주장하며 미디어산업정책을 견인하려고 할 때 방송통신위원회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고 증진시킬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정책의 균형감각이다. 이는 방통위의 존재가치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며, 무엇보다도 건강한 사회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