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 ‘우린 문자로 통해요’에서는 강의 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신세대’에 대한 놀라움이 발견됩니다. “신세대들이 이처럼 문자통신에 빠져드는 것은 한 통화 30원 정도에 40~50개의 글자를 보낼 수 있다는 ‘경제성’이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라며 “멀티태스크에 익숙한 이 세대의 특성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라 합니다. 기사의 작성자가 요즘 대학에 간다면 강의실 책상 위에 버젓이 올라온 노트북 화면 속 열린 창의 개수가 수두룩한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낄 듯하네요.

 

정보통신기기와 함께 멀티태스킹이 시작되었나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이전 세대 분들이 학교 가는 길에 손에 들고 외우던 영어단어장 역시 통학이란 행위와 외국어 학습의 멀티태스킹이었습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걸음을 뗄 때마다 되뇌던 콩글리시 발음과 한국어 뜻의 조합은 그날 볼 시험을 준비하는 마지막 노력이었습니다. 더 어릴 적 멀티태스킹의 기억은 엄마에게 혼날 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꾸지람의 시간을 보내며 벽지 무늬를 하나둘씩 세던 것이었고요.

 

그 시절 주어진 일을 여러 개 처리하기 위한 환경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자동차가 발명되고 한참 후 라디오가 더해질 때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운전자의 주의가 산만해져 사고의 위험이 커질까 저어하여 라디오 장착을 금지하였다 합니다. 그분들이 지금 테슬라 자동차에 달려있는 광활한 스크린을 보면 기가 막혀 하지 않을는지요.

 

그 후 환경의 변화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뽐내는 인류를 탄생시켰습니다. 네덜란드의 교육공학자 빔 빈 교수는 그의 책 <호모 재피언스(Homo Zappiens)-디지털 시대에 자란 사람들>(2006)에서 게임이나 TV의 채널 돌리기, 그 밖의 여러가지 다양한 작업들을 동시에 처리하는 인류의 출현을 설명하였습니다. 호모 재피언스는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고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며 읽기보다 종합적 인지를, 순서적인 일보다 비선형적인 일을, 경쟁하기보다 협력하는 방식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멀티태스킹 인류, 호모 멀티타스쿠스(Homo Multitaskus)의 본격적인 출현입니다.

 

MIT의 뇌신경학자 얼 밀러 박사는 우리의 뇌가 멀티태스킹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것에만 익숙하다고 말합니다. 여러가지 일을 바꾸며 처리하기 위해서는 ‘전환 비용’(switch cost)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그런 이유로 때로는 멀티태스킹을 강제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수험생을 위한 휴대폰은 게임과 채팅이 불가능하게 설정돼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멀티태스킹을 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제어하는 방식입니다. 마치 일본 만화 <드래곤 볼>에 나오는, 바깥에서는 하루이지만 그 안에서는 1년의 시간이 흐르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세상으로 향하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공부에 대한 결심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공부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고시 준비 같은 시간과 집중이 많이 요구되는 일에 대한 당찬 각오를 깨지 않기 위해 유튜브를 통해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 세계로 송출하는 것입니다.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한가지 일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외부와 상시 연결되어짐으로써 나의 결의의 실행에 실시간 증인을 세우는 것이죠. 한가지 일에 집중하기 위해 유튜브 접속과 공부를 함께하는 이런 아이러니한 행위는 싱글태스킹을 위한 멀티태스킹이라 불러야 할까요?

 

최근 인스타그램에는 밀레니얼세대가 동시에 3개 이상의 스크린을 함께 보는 장면이 발견됩니다.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하던 시절 귀와 눈을 분리하는 수준에서 행하던 동시작업이 이제 4개의 스크린을 한꺼번에 보는 인류의 출현으로 진화했습니다. 화성에 도달하는 우주선을 바라보는 나사의 연구원들처럼, 혹은 전 세계의 테러용의자들을 추적하는 비밀첩보조직의 본부 속 요원들처럼, 이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스크린에서 각기 다른 장면을 동시에 바라보는, 잠자리처럼 겹눈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폴란드의 심리학자 콘라드 마이 박사 역시 멀티태스킹은 신화와 같아서 실제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박사는 두 가지 일을 한다면 그중 하나는 거의 자동으로 할 수 있을 만큼 완벽히 마스터해야 가능하다며 25분 동안 한 활동에 집중할 것을 권합니다.

 

이렇듯 실제 그 효과는 미지수인 멀티태스킹에 우리가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식의 증가와 빠른 삶의 속도, 그리고 전 지구적인 협업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진 현대인들로선, 이제 과정 속 작은 즐거움이라도 없으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요? 마치 딸기맛 어린이 감기약 같은 의무와 보상을 섞은 기묘한 타협 체계를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토요일 저녁, 마감이 목전에 다가온 기고 글을 쓰기 위해 크리스마스캐럴이 흐르는 카페에서 청포도 주스로 스스로를 달래며 웹서핑과 함께 카톡을 확인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라 더욱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