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팩트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가’라는 기사를 우연히 발견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엘리자베스 콜버트 기자가 작년 초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쓴 글이다. 스탠퍼드대학 연구팀의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들이 잔뜩 소개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상상 이상으로 고집스럽다는 것이 핵심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어도 여간해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학생은 나중에 그 점수가 오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자기가 평균 이상은 했을 것이라 믿었다. 낙제 점수를 받았던 학생은 그 점수가 오류였음을 통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짜 점수를 낮게 예상했다.

 

또 다른 실험은 ‘사형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 또는 없다’는 연구결과를 평가하게 한 것이었다. 사형 찬성론자들은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가 높다는 연구를 높이 평가하면서 다른 논문은 엉터리라고 혹평했다. 물론 사형 반대론자들은 정반대로 반응했다. 자신의 믿음에 동조하는 정보를 접했을 경우 도파민이 분비되어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연구도 있다고 한다. 요는, 어떤 것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에 그 믿음을 배격하는 ‘사실’은 별로 설득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실험 결과들을 읽으면서, 최근 일상어가 되어버린 ‘팩트 체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거짓 정보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팩트 여부를 검증하는 작업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지만, ‘팩트’를 접한 사람들 가운데 과연 몇이나 자신들의 ‘믿음’을 바꾸게 될까?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꾸며낸 뉴스를 걸러내고 사실을 제공한다는 취지의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며칠 전에는 ‘조덕제 사건’을 재조명했다. 배우 조덕제가 영화 촬영 중 상대 여배우를 성추행한 혐의로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었다. 대법원 최종판결에도 불구하고 조덕제 배우의 무죄를 믿는 사람에게 <당신이…>가 제공한 팩트 체크는 무의미하다. 법원은 썩었거나 무능하고, MBC는 엉터리 뉴스를 만드는 방송사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특히 피해자 반민정 배우가 식당과 병원을 상대로 돈을 뜯어냈다는 뉴스는 악의적인 가짜뉴스로 판명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를 “어쨌든 성격이 안 좋은” 배우로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중앙일보는 지방 국립대의 한 강사가 세계 1%의 학자로 선정되고도 교수 임용에서 10번 넘게 떨어진 사연을 소개했다. 국내 박사에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요인까지 더해져서,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lt;뉴스톱&gt;의 ‘팩트 체크’에 의하면, 조선영 박사의 연구업적은 그다지 높게 평가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중앙일보 기사를 읽은 많은 사람들은 팩트 체크를 접한 후에도 여전히 그를 “어쨌든 연구력은 뛰어나지만 불운한” 학자로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나이를 먹으면서 보수적이 된다는 것은 정치적 성향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다가 종내는 변화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보수화이다. 익숙함이 주는 평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고, 오랜 기간의 믿음을 저버리기엔 너무 큰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유의 수수께끼>의 저자 메르시에와 스퍼버는 사람들이 늘 고집을 부리거나 자주 속아 넘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남의 주장이나 의견에는 꼼꼼하게 약점을 잡아내고 비판하는 사람이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서는 관대해질 뿐이다. ‘내 편 편향’이다. 이 편향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

 

콜버트의 글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소개된 실험 중 하나에서, 연구자는 사람들에게 건강보험이나 교사 성과급 지급 등 공공정책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피험자들은 처음에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찬성이건 반대건 의견은 분명하고 주장은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그 제도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며 사람들의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해달라고 하자, 피험자들은 자기가 이 제도에 관해 잘 모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어 다시 한번 찬반을 묻자 극단적인 답변은 눈에 띄게 줄었다. 팩트가 의견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지만, 사안에 대한 정보 부족을 인지하도록 만들어서 독선이나 아집을 제어할 수 있음을 뜻한다.

 

물론 믿음이 강하면 정보 부족을 인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딜레마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켜면 쏟아져 들어오는 파편적인 정보들만으로 배가 불러 많은 것을 안다고 믿어버리면 ‘내 편 편향’은 강화만 될 뿐이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지식이 쌓인다고 믿는 대신 내 정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나의 무식을 흔쾌히 인정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